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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 클레어 Jul 02. 2022

내가 받은 최고의 충고

문장으로 사는 사람의 일일 

 그림이 아닌 문장을 거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한 적이 있다. 타이포그래피 근처에 가지도 못했지만 이따금 매혹되어 버린 문장들을 적어 책상 주변에 붙여둔다. 포근한 응원과 격려, 뜨거운 다짐들 속에서 최고의 충고 하나를 고르고 싶었다. 그런데 거기엔 없었다. 충고를 충고이게 하는 필수요소들, 저릿하고 통렬한 아픔, 치부를 들킨 민망함, 정곡을 찔린 처연함이. 저마다의 심연 속에 살다가 삶의 어느 순간 불시에 찾아오는 채무 같은 반사적 기억. 지금의 내게도 여전히 유효한 그것은 2020년 하노이 사무실에서 터져버린 분노의 대가였다. 점점 더 집중되는 페이퍼 워크에 지쳐 한국으로 복귀하겠다고 했고 상사는 외쳤다. “야, 이건 일이잖아.”


 그 한마디가 내포한 건 뭐였을까. 겨우 '일'에 불과한 것을 왜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여 이 작은 이방인의 사회와 관계를 등지고, 공기를 무겁게 하냐는 핀잔이었을까. 여태 그것밖에 보지 못하는 좁은 시야와 우둔한 사고를 나무란 것일까. 충고의 역습이 남긴 먹먹함을 버텨보려 발버둥 쳐봐도 나는 안다. 또다시 어둠에 갇혔다는 걸. 이미 주변은 fade-out 된 지 오래라는 걸. 그저 보통의 인간에게 몰입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아니 더 정확히는 ‘과몰입’ 또는 ‘함몰’이 맞을까. 일과 일상의 경계를 지우는, 시간의 왜곡을 감행하며 앞만 보고 달리는 말이 되어버리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 좁은 집단 안에서의 '인정'을 갈구하고 '우월감'에 도취되는 궁극의 이유는 결국 단단한 내 세계의 부재다. 좀 더 빨리 기억해내야 했다. 좀비 게임물이 교재였던 회화수업에서 지겹도록 외쳤던 그 문장을. Let’s get the hell out of here. 


 유통기간이 지난 요거트를 버리며 팩으로 재활용할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했음에 씁쓸해하다가, 없는 여유도 부려보는 연습을 하러 카페에 왔다. 일이 아닌 글쓰기 과제를 데리고 나와, 걱정의 손도 잡지 않은 무방비 상태의 자연스러운 나로 유유자적한다. 이건 도저히 충고가 아니라고 돌아섰던 책상 앞 문구들의 사진을 들여다보다 이제는 마음에 각인하고 싶은 한 마디를 고른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규명할 순간들은 진작에 일어났고,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거라는' 예언. 무시로 깨어지는 생존과 삶의 균형 속에서 끝내 중심을 잡고, 내 세계를 만들길 포기하지 말자는 다짐을 굳혀본다. 그것을 나만의 세계가 아닌, 나와 타인의 세계로 확장시키는 도전과 노력도 잊지 말자고 다독인다. 시야에서 지워진 타인들을 복원시키고 그들의 무게를 잊지 않으며 공존할 수 있는 지혜가 내 안에 머물길 소망한다. 그리고 이제는 공감할 수 있는 상사의 외침도 문장으로 걸어둘 수 있는 용기를 쥐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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