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추억을 회상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을 누군가 내게 던지면, 나의 대답은 사진이다. 사진은 과거의 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가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볼 수 있어서다. 수 많은 시간이 흘러 머리 속에 남아있는 기억이 별로 없다해도 사진을 보면 잘 생각나지 않던 기억들을 다시 살아나곤 한다. 놀이공원, 동물원 등 사진첩에 있는 사진들을 보며 ‘아 이 때는 그랬지’, ‘이때 여기도 갔으면 좋았을텐데..’ 등을 말하며 수다를 떨기도 한다.
옛날에는 사진을 찍을 때면, 신중했다. 필름 한 장 한 장이 소중했다. 그래서 1장의 사진을 찍는데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특히 해외여행을 갈 때는 추억이 된 코닥, 후지 필름을 몇 통씩 가지고 갔다. 가서 무조건 멋진, 예쁜 사진을 많이 건질요량으로.
‘조금만 옆으로..’, ‘조금만 뒤로…”, ‘아니 그렇게 말고’, ‘됐어, 그대로 있어봐’
사진을 찍을 때면 사진을 찍는 사람은 신중하게 자신이 원하는 구도를 생각하며 사람들을 이리 저리 왔다갔다 하게 했다. 필름카메라를 이용해 찍은 사진은 지금처럼 바로 볼 수 없다. 여행 후 사진관에 들려 필름을 맡기고 며칠을 기다려 해야 했다. 현상되어 나온 사진을 보며 같이 여행을 갔다 온 친구들과 사진을 바꾸기도 하고 잘 나온 사진은 몇 장을 더 현상하기도 했다. 지금도 사진관이 있지만 이제는 이런 추억의 여행 사진을 현상하는 곳은 많지 않다. 가족사진, 취업이나 여권용 증명사진, 혹은 아기 백일이나 돌 사진 등이 대부분이다. 첫 아이가 태어난 후 백일사진은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자기 몸을 잘 가누기도 힘든 아이를 예쁜 의자에 앉히고 웃기기 위해 노력하던 사진사, 박수를 치며 사진사를 보게 하려던 나. 이처럼 사진찍을 때면 많이 수고가 들곤 했는데,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바로 확인한 후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찍는다. 과거의 수고는 사라졌지만 사진이 현상될 때까지의 그 기다림은 없어졌다.
필름카메라는 1888년 롤필름을 내장한 코닥카메라가 등장하며 시작되었다. 당시 코닥카메라는 ‘올해의 최고 발명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위대한 발명품을 만들어냈던 코닥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졌다. 필름카메라, 디지털카메라, 스마트폰 카메라로의 변화로 필름 카메라는 과거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출력해주는 디지털 기기도 출시가 되었지만, 필름카메라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그런 사진의 의미는 찾아보기 힘들다. 분명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사진이지만 그 촉감은 필름카메라와 다르다. 아마도 그건 촉감 뿐만 아니라 사진을 찍는 그 순간의 경험이 같이 녹아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스마트폰 카메라는 분명 과거보다 더 좋다. 빠르게 내가 원하는 사진을 바로 바로 확인하면서 더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이런 사진 촬영은 지금은 이벤트처럼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제 어디서 아무 생각없이 사진을 찍는 것은 습관 아닌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 사진들은 웹하드나 스마트폰 내장 메모리에 저장되어 있지만 꺼내보지 않은 사진이 된다. 때론 사진을 정리하기도 하지만 그 정리는 과거처럼 사진 한 장 한 장을 보며 추억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진은 별로야’, ‘이 사진은 좀 괜찮네’라는 생각으로 사진을 마주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기는 하지만 그 변화의 순간을 기억하기 보다는 그냥 스쳐지나가는 인스턴트식 경험이 되어버린다.
때론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떤 제품을 구매할 때, 제품의 실질적인 효용보다는 포장만을 보는 것처럼 사진의 의미를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닌가라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코닥처럼 기억 속에 사라지고 변화에 대응하면 후지처럼 살아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을 잃어버린 적응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