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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글생각 Jan 11. 2019

빨간 우체통_손편지의 시대에서 전자메일의 시대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까톡’, ‘까톡’ 


SNS의 시대에 카톡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빨리 전달할 수 있는 편한 수단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무슨 일만 생기면 카톡을 통해 수십개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리로 이런 카톡에 질려 사람들은 알림을 꺼놓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이런 메시지를 전달할 때 편지를 많이 사용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진심을 다해 손편지를 쓰던 때가 있었다. 그 글 속에는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진심이 있었다. 


편지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이야 방금 이야기한 카톡, 이메일 등을 생각하지만 과거에는 우체통이었다. 그것도 빨간 우체통. 지금은 노란 카톡과 녹색 검색사이트를 생각하지만. 요즘은 손으로 편지를 쓰는 일이 없지만 손편지를 많이 쓰던 당시, 빨간 우체통은 여자친구를, 군대가 남자친구를,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과 친척들을 생각나게 했다. ‘빨간’이라는 상징적인 색때문이라도 빨간 우체통=손편지라는 생각은 머리 속에 깊이 박혀있다. 나 또한 연애할 때는 작은 엽서에 손편지를 많이 쓰던 때가 있었다. 물론 연애 당시에도 이메일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타자를 쳐서 보낸 이메일은 진심을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편지지나 엽서에 적혀있는 글자의 모습을 통해 작은 떨림을, 때론 진심의 정도를 글자체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손글씨, 손편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이 시대에, 우체통은 손편지와 함께 점점 사라지고 있다. 


https://pixabay.com/ko


이런 우체통은 1895년 8월 1일 개성에 최초로 설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동네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우체국 앞에서나 조금 볼 수 있는데, 그 우체국도 이제는 줄어들고 있다. 우체통수는 93년에만 해도 57,559개였다. 하지만 2015년에는 14,920으로 약 70% 정도 줄어들었다고 한다. 정말 이제는 손편지를 쓴다 해도 손편지를 붙일 우체통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가 되었다. 


장거리 연애의 상징처럼 느껴졌던 이 우체통은 통신 기술의 발달로 손편지의 시대가 저물고 이메일 시대가 열림에 따라 사라졌다. 군대에서 손편지를 받아보던 때가 있었던 내게 손편지의 기억은 이제 추억이 되고, 언제 손편지를 썼는지 기억 조차 잘 안나는 시대가 되었다. 연애하던 시절 보냈던 그림을 그려 보냈던 손편지는 추억상자 속에 깊이 잠 들어 있다. 


IT 기술이 발달되면서 사라진 것들은 너무 많다. 특히 이런 IT 기술의 발달은 손으로 만지고 느끼는 것들을 점점 사라지게 했다. 굳이 직접 접촉하지 않더라도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람인지라 여전히 감성을 중시해 진심을 전달할 때 손편지를 쓰곤한다. 


이메일 통해 보내는 편지는 아무리 정성이 들여도 패스트푸드처럼 틀에 맞추어 빠르게 나온 음식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조직관리를 하는 리더라면 한 번쯤 느꼈을지 모른다. 이메일 통한 소통이 얼마나 무미건조한지. 진심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장문의 이메일 밖에 없다는 것을. 물론 글의 내용을 통해서도 진심을 보여줄 있지만 키보드를 통해 작성된 이메일리 클릭 한 번으로 상대방에게 전달되었을 때, 그 진심은 보여지는데 한계가 있다. 우체통은 편지를 보낸 후, 그 사람이 지금쯤은 받아보지 않았을까? 혹은 아직 도착한 것이 아닌가? 등등 많은 생각의 시간을 준다. 하지만 이메일은 바로 수신확인을 통해 “왜 이메일을 봤는데, 답이 없는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손편지가 우체부 통해 전달될 때, 사람의 온기를 통해 전달된 그 손편지에는 분명 내 진심도 같이 전달될 거라는 확신 아닌 확신이 서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이메일은 업무용으로만 느껴지고 과거처럼 나의 가슴어린 사연이나 마음을 전달하는 수단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 이렇게 기다리지도 않을 것이다. 페이스북,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 각종 SNS를 통해 내가 찾고자 하는 사람을 찾고 바로 인스턴트 식품처럼 되면 되고 아니면 말고라는 식의 메시지를 보내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체통이 이메일로 편한 이 시대에 상대에 대한 깊은 고민의 시간을 갖기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예의를 중시하는 문화가 아닌 그냥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이제 찾아보기 어려운 우체통은 어쩌면 우리의 감성통장이었을지 모른다. 우체통에 넣은 내 손편지의 수만큼 나의 감성지수는 올라가고 상대에 대한 배려지수는 깊어졌을지도. 그 빨간 감성통장이 사라진게 어쩌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삭막한 시대가 된 것 같다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든다. 


이벤트용 혹은 전시용이 된 빨간 우체통. 1년에 한 두번은 손편지를 통해 자신의 감성지수를 높여보는 것은 어떨까? 빨간 우체통만큼이나 빨간 심장이 더 빨게지도록 말이다. 인스턴트 식품이 아닌 할머니 백반 같은 마음이 전달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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