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고수는 관점이 다르다
스마트폰 속도 경쟁이 붙었을 때, 과거 한 통신사는 광고에서 “빠름. 빠름. 빠름”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적이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모든 제품의 수명이 짧아지고 있다. 패션산업에서는 유니클로, ZARA, H&M 등 패스트패션 업체가 등장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빠른 속도 경쟁은 기업이 시장을 주도한다고도 볼 수 있지만 고객들의 니즈가 그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과거에 전화, 라디오 등의 보급 속도는 느렸다. 하지만 지금은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온 이후, 스마트폰의 확산 속도는 정말 파괴적이다. 카카오뱅크는 또 어떤가? 지금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의 확산 속도가 너무 빨라서, 얼마나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빠르게 실행하느냐도 중요해졌다.
이런 ‘빠름’이 주도하는 세상에서 기획의 생명은 품질Quality보다 전달 속도Delivery다. 품질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품질도 중요하지만 전달 속도도 무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일을 할 때, 후배들에게 가끔 이런 말을 한다.
"다양한 자료를 검토하여 보고서를 정교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해. 하지만 시간 내에 보고서를 작성하는 게 더 중요해. 일단 뭐라도 있는 보급률보고서는 수정할 수 있어.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보고서는 다른 사람과 논의조차 할 수 없어."
프로젝트형 업무일 때는 속도가 더욱 중요하다. 기간 안에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컨설팅 같은 프로젝트 업무일 때는 보고서에서 세부 항목을 세밀하게 보여주기보다는 먼저 전체적인 큰 그림을 던져준 다음, 세부 항목은 상사나 고객과 조정해가는 것이 필요하다. 업무를 하다 보면 다양한 유형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큰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디테일에 집중하는 사람, 커뮤니케이션에 강한 사람, 한 가지 일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 그런데 한 가지 일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품질의 보고서를 보여줄 수 있다고 해도 기한 안에 끝내지 못하면 절대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만약 자신이 너무 품질에만 집중한다면 속도를 높일 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 일단 상사가 원하는 혹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상태에서 기획안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그 후 상사에게 기획안을 보여주고 검토 의견을 들어 수정한다. 상사의 핵심 니즈를 빠르게 파악하여 핵심 사항을 기획안에 담아야 한다. 다음 대화를 한번 보자.
최 팀장 : 김 대리, 이번 하반기에 출시할 스마트폰 콘셉트 기획안은 언제 보고할 건가?
김 대리 : 현재 자료 조사 중이어서 3주 후에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최 팀장 : 3주? 지금 시장 트렌드가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 몰라? 지금 하루가 급한데….
김 대리 : 하지만 스마트폰 이용 행태 조사가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3주 후에나 스마트폰 콘셉트 설정이 될 것 같습니다. 자사와 경쟁사 스마트폰
이용자 대상으로 각각 1,000명, 총 2,000명에게 약 50문항을 설문하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습니다.
대화에서 김 대리의 말처럼 스마트폰 이용 행태 조사를 하는데 자사와 경쟁사 샘플이 각각 1,000명이나 필요할까? 3주라는 긴 시간 동안 설문 결과를 기다려서 스마트폰 콘셉트를 도출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2,000명이나 되는 샘플 수를 줄여서 빨리 기획서를 완성하는 쪽이 더 낫다.
즉, 김 대리는 샘플 수가 결과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봤어야 한다. 샘플이 많아 조사의 신뢰성이 높은 것도 중요하지만 시간 안에 원하는 결과물을 내는 것도 중요하다. 경쟁사보다 먼저 새로운 스마트폰을 출시할 수만 있다면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로서 기반을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제품 출시나 신사업 기획안은 빨리 기획안을 만들고 파일럿 테스트를 해봐야 하므로 속도가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기획 일정을 짤 때도 가능한 한 마감일을 정해놓고 역순으로 일정을 짜는 연습이 필요하다. 업무 중심으로 일정을 설계하다 보면, 마감일에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역순으로 짜면서 일정이 부족하면, 그때 어떻게 일을 효율적으로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낫다. 기획의 궁극적인 목적을 생각해보자. 기획은 문서 작업이 아니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여 문서로 만들고 보고를 통해 ‘실행’을 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획을 문서로만 접근하면 기획서만 보이게 된다. 기획의 본질은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