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숨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발리에서 생긴 일

마이클 샌델. (2012).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by Breathinker

[생각숨 8호]


발리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여러분들은 눈사람을 만들던 사람들이다. 그 어린 시절에 더 따뜻한 목도리, 더 두꺼운 이불을 원한 사람들이 아니라 바깥으로 뛰어나가서 무언가를 스스로 만들었다. 그게 그냥 짐승이 아니고 사람이었다. 이름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눈을 만든 '사람'이었다. 그리고 눈사람이 녹을까 봐, 봄이 올까 봐 무서워서 오히려 나의 눈사람을 위해서 기도했다. '세상에서 가장 길고 추운 겨울을 주옵소서.' 이게 사랑이고, 내가 만든 창조물에 대한 나의 꿈이고, 그게 나의 삶이다. 이런 사람은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다."


이어령. (2025). 이어령의 말. 세계사. 16쪽.


4월부터 5월. 한 달에 가까운 시간. 아내와 아이가 네 곳의 숙소를 옮겨가며 발리 살기를 하고 왔습니다. 저도 덕분에 왔다갔다 한 주 넘게 발리의 이곳저곳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두 주는 아이의 친구 두 가족과 함께 보냈고, 두 주는 아내의 친구 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행을 마칠 때쯤 함께 했던 모두가 한결 같이 말했던 건 발리가 참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모로 궁리를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그 시기쯤 읽고 있었던 책이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였습니다. 도서관 대여 기간을 연장하면서까지 열심히 읽어보고 싶던 책이었죠. 이 책의 영어 제목은 'What Money Can't Buy: The Moral Limits of Markets'입니다. ChatGPT와의 대화를 통해 얻은 책의 핵심 내용을 간단히 살펴볼까요? 샌델이 이 책을 통해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은 "우리가 사고팔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여, 사고팔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입니다. 샌델은 출판 당시의 여러 사회 이슈를 통해 시장의 논리 두 가지, 모든 것을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교환성과 어떤 선택이 이익이 되는지를 따지는 효율성에 의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또 하나! 시장을 통해 자발적으로 거래되는 공정성(시장이 주장하는)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합니다. 이는 예가 필요할 것 같은데, 책에서 샌델은 캐나다 북부 지역의 이누이트 공동체 이야기를 가져옵니다. 이누이트는 바다코끼리를 사냥해 식량을 마련했습니다. 바다코끼리의 가죽과 뼈는 공유해 생활을 영위하는 데 활용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 지나친 포획으로 바다코끼리 개체수가 감소하자 사냥 허가제가 생겼습니다. 이누이트 공동체는 이 사냥권을 법으로 보장받았죠. 그런데 생계가 어려운 이누이트 공동체 일부가 이 사냥허가권을 외부 사냥꾼에게 판매해 수익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헛점을 활용해 일부가 합법적 유료 사냥 프로그램을 운영하죠. 샌델은 이 사례를 통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법의 절차적 공정성과 이누이트 공동체의 경제적 이익에 기여한다는 윤리적 공정성을 비판합니다. 시장에서의 자발적 계약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누이트의 가난은 그들 스스로가 만든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불평등한 조건이 아니냐는 것이죠. 이 관점은 샌델의 다른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시작돼 '공정하다는 착각'으로 확장됩니다. 시장주의자의 공정성은 사회의 정의에 부합하는가라는 깊은 통찰에서 보면 착각이라는 것이죠. 무엇이든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교환성, 이익이 된다면 모든 것이 교환될 수 있는 효율성, 절차적 공정성에 기반해 효율적이라면 윤리적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은 이 세 가지의 시장 논리를 아주 차근차근 여러 사례를 통해 비판하고 있습니다.

다시 발리의 이야기. 발리에서 꽤 다양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우선 그랩을 통해 다양한 택시 기사를 만났죠. 목적지를 잘못 입력해 꽤나 정신없게 만들었음에도 팁도 거절하며 웃으며 인사했던 기사, 공항가는 길 타이타닉 주제가를 흥얼거리며 꽉 막힌 거리를 제 마음과는 무관하게 슬렁슬렁 운전했던 기사도 있었죠. 역시 그랩을 통해 오토바이로 무엇이든 배달을 하는 다양한 기사를 만났습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어쨌든 웃어주는. 아이를 돌봐주는 일을 하는, 아내와 동갑내기이자 대학생 딸을 키우는 엄마도 만났네요. 아이를 위해 영어 이름이 새겨진 목걸이를 만들어 주었죠. 저희가 있던 시기, 여동생이 결혼을 해 기분이 무척 좋아보이던 뒤통수부터 목까지 부처를 문신으로 새긴 다이버도 만났네요. 바다로 꼭 뛰어들고 싶은 저 대신 물이 무섭다는 두 아이와 너무 재밌게 놀아주며 잠까지 재운 20대 초반의 배뽈록 청년도 있었네요. 동물원에 들렀다 처음으로 발리에서 마주한 교통체증. 서울과 부산까지는 갔을 시간에 여전히 도착하지 못해 짜증과 지루함이 밀려올 때 무심하게 웃고 떠들며 운전하는 밴 기사도 떠오르네요.

걸어다니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혼잡함 속에 있는 그들만의 규칙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건 어려웠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그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겠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발리가 계속해서 좋아지는 건 단순히 너무나 좋은 날씨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늘 호의적인 태도, 남들의 시선에 좌우되지 않는 내면의 단단함, 그리고 어떤 순간에도 여유를 잃지 않는 느긋함. 배우고 싶다랄까요? 오토바이로 1-2시간쯤은 기꺼이 출퇴근을 하고, 일이 끝나면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어느 가게에 모여 친구와 모여 웃고 떠들고, 외국인을 정말 그저 외국인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삶의 균형을 잃지 않는. 그들의 삶이 진심으로 부러웠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상황, 그리고 그들의 사회적 문제에 눈감고 여행자의 시선으로만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은 샌델의 입장에서 보면 역시 하나의 착각, 착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발리를 다녀온 저는 겨울이 없는 발리에서 눈사람을 만들던 어릴 적 나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기꺼이 겨울에도 뛰쳐나가 놀았던 나. 기꺼이 녹아져 사라질 눈사람을 만들고 기뻐했던 나. 오늘이 중요했던 나. 매일매일 아침에 설레며 눈을 뜨고 또 내일을 기대하던 나.

발리 역시 시장입니다. 그런데 제가 발리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걸 깨달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효율성과 거리를 둔 삶입니다. 발리는 교통 정비가 몇몇 곳을 제외하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오토바이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데 신호등이 거의 없습니다. 출퇴근 교통체증은 정말 상상을 초월합니다. 음, 그래서요. 그들은 그렇게 막히는 대로 살아갑니다. 차를 타지 않고 오토바이를 타면 되거든요. 그럼 슝슝, 자신의 원하는 곳에 너무 늦지 않게 갈 수 있습니다. 그럼 된 거죠. 다음으로, 돈으로 자신의 삶을 교환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제가 만난 사람들은 그랬다는 의미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당당했습니다. 자신의 일에,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당당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에 지나치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비굴한 모습은 없었습니다. 잘못을 했으면 인정했고, 개선 방향을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의 대응은 느렸고, 해결되지 않은 점도 있었습니다. 음. 그래서요. 오늘 하루가 행복했으면 되는 거죠. 그리고 내일의 행복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 되는 거죠.

발리에 꼭 가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발리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무엇인지 꼭 한 번 찾아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겸사 마이클 샌델의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읽지는 마시고 손에 들고 다녀보시길. 아니 도서관에서 빌려 낡디 낡은 책을 배낭에 넣어 짊어지고 다녀보시길. 무질서한 발리의 어느 길 모퉁이를 걸어보는 게. 무더운 발리의 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직접 경험하는 게 샌델의 책을 몸으로 읽는 게 되실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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