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하는T Jan 20. 2024

우리가 잘 속는 이유...임기응변 산물 뇌

개리 마커스 뉴욕대 심리학과 교수의 '클루지'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해결책'
머리 뒤 향한 망막·중의어 투성이 언어
보이는대로 믿고, 통계보다 리뷰 신뢰하는 건
뇌가 대자연 생존투쟁서 그렇게 발달한 때문
피곤할때 결정 말고, 질문의 프레임 의심할 것



소싯적에 심리학책 쫌 읽어봤다고 자부하지만 '클루지'라는 책은 신선합니다. 인간의 마음을 '임기응변식 대응의 산물'이라는 전제 하에 설명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인간의 뇌가 대자연과의 투쟁 상황에서 그때 그때 필요에 맞게 적응해 왔기 때문에 불완전하다고 저자인 개리 마커스 미국 뉴욕대 심리학과 교수는 주장합니다.


우주에서 양말·비닐봉지로 만든 이산화탄소 여과기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클루지(Kluge)’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클루지란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그러나 놀라울 만큼 효과적인) 해결책"을 뜻합니다. 1970년 4월 아폴로 13호의 달착륙선에서 이산화탄소 여과기가 고장나자 우주비행사들은 비닐봉지와 마분지 상자, 절연 테이프, 양말 한쪽으로 여과기 대용물을 만들어 대응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작동은 하는 그런 도구가 클루지입니다. '영리한'을 뜻하는 독일어 단어 '클루그(klug)’가 어원이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예시로 자동차 1958년산 뷰익 리비에라의 와이퍼 모터가 있습니다. 옛날 자동차들은 전압이 낮아서 와이퍼까지 작동시키기는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기 대신 엔진에서 나오는 흡입력으로 와이퍼 모터를 돌리는 방식을 적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평지를 달릴 때는 상관 없지만, 문제는 언덕을 올라가거나 가속페달을 세게 밟으면 와이퍼 속도가 느려지거나 아예 멈춰버렸다는 것이죠.  점차 기술이 발달하면서 와이퍼는 현재와 같이 온전한 전기식으로 대체됩니다.


그러나 '클루지'가 제거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저자는 존 앨먼이라는 신경과학자가 방문한 한 수력발전소를 소개합니다. 이 댐에선 최신 컴퓨터 공학 기술로 1940년대 만들어진 진공관을 통제하고, 진공관 시스템은 다시 가스를 밀어 넣는 장치를 통제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댐을 부수고 다시 짓는다면 당연히 오래된 진공관 시스템을 제거했겠지만, 주변 마을로 전력 공급을 한시도 중단할 수 없기 때문에 재설계 프로젝트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겁니다.


John’s picture...존을 찍은 사진인가, 존이 찍은 사진인가, 존의 사진인가

저자는 인간도 이 같이 클루지에 클루지를 더하며 발달해왔다고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언어의 불완전함을 제시합니다. 그는 "완전한 언어라면 애매하지 않으며 체계적이고 안정되고 중복되지 않으며 나아가 우리의 모든 생각을 표현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라며 우리 언어가 그렇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언어의 애매함을 볼까요. 영어로 John’s picture는 △존이 누군가를 찍은 사진 △누군가 존을 찍은 사진 △존의 소유물인 어떤 대상에 대한 사진 등 3가지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별 다른 기능 없는 복수 개념의 중복현상도 많습니다. “These three dogs are retrievers"라는 한 문장안에 복수 표현이 5번이나 들어가 있다는 지적입니다(사족이지만 이 지점에서 한국어는 비교적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개 세마리는 사냥개야'라고 복수 표현을 한번만 쓰고도 뜻을 전할 수 있으니까요).


비교적 체계적인 언어로 평가된는 라틴어에도 애매함이 나타납니다. 라틴어에서는 동사의 주어가 생략될 수 있기 때문에 3인칭 단수형 동사는 그 자체로 완전한 문장이 될 수 있습니다. amat('사랑하다'의 3인칭 단수형)이라는 문장은 △그가 사랑한다 △그녀가 사랑한다 △그것이 사랑한다 등 세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예비효과와 후광효과...너무나도 쉽게 속는 우리의 뇌

저자는 인간의 심리를 클루지라는 시각에서 설명합니다. 예비효과와 후광효과가 대표적입니다.  그가 제시한 주요 심리학 실험 사례를 볼까요.


#예비효과의 사례

1. 실험참가자들은 흐트러진 문장을 정돈하라는 과제를 받는다. '늙은' '현명한' '잘 잊는' '플로리다'와 같은 노인을 연상시키는 단어들을 접한 참가자들은 과제 이후 나가면서 그렇지 않은 참가자들보다 더 느리게 걸었다.

2. 자동차 사고 영화를 본 실험참가자들에게 한 단어씩만 표현을 달리해 질문을 던진다. "차량들이 세게 충돌(smash)했을 때 차들은 얼마나 빨리 달리고 있었나"는 질문을 받은 참가자들은 "차량들이 접촉(contact)했을 때 차들은 얼마나 빨리 달리고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은 참가자들보다 33%가량 더 빠른 속도를 답으로 제시했다.

3. 실험 참가자들에게 '가구, 확신하는, 구석, 모험적인, 의자, 탁자, 독립적인, 텔레비전' 등의 단어를 외우도록 시킨다. 이후 도널드란 가상의 인물을 소개한 글을 제시한다. "도널드는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고 자동차 파괴 경기에도 출전했고 보트에 대해 잘 모르면서 제트엔진이 달린 보트를 운전하기도 했다 등등". 다수 참가자들은 '도널드가 모험적이다'라는 평가를 내놨다. 처음에 '무모한'이란 단어를 외우도록 했다면 도널드에 대한 평가를 달라졌을 것이다.


#후광효과의 사례

1. 대학생들은 잘생긴 교수가 가르치기도 잘한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하 측면에서 긍정적인 느낌을 받으면 이를 일반화한다.

2. 광고주들은 매력적인 사람이 특정 상표의 상품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더 많이 구매한다.


저자는 '어떤 얘기를 들으면 일단 그게 사실이라고 믿고 보는 성향'이 인간에 각인돼 있다며 주장합니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는 "모든 정보를 이해와 동시에 (먼저) 받아들이고 … 틀린 정보는 … (나중에야) 물리친다"고 말했다네요.


오랜 세월 인간의 '자연과의 투쟁' 과정에서는 눈에 보이는대로가 실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습득한 습성이라는 설명입니다. '가짜 뉴스'는 물론 AI 기술로 만든 페이크 영상이 일반화된 현재 이 같은 습성은 우리에겐 취약점으로 작용하겠지요.


같은 차원에서 저자는 인간의 반응 체계를 '선조 체계'와 '숙고 체계'로 구분합니다. 현대인도 인류가 긴 과거 자연과의 투쟁에서 습득한 반응 체계인 '선조 체계'가 비교적 최근 들어 형성된 반응 체계인 '숙고 체계'보다 더 빠르게 작용한다고 설명합니다.


보상을 평가하는 중격의지핵은 장기 계획과 신중한 추론을 인도하는 안와전두피질보다 먼저 성숙한다고 합니다. 청소년들이 성인들의 기준에선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뇌 발달의 시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음을 저자는 제시합니다.


왜 다수의 로또 당첨자들이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지에 대한 심리학적 해석도 흥미롭습니다. 인간의 뇌는 로또 당첨 직후에는 다량의 도파민을 분비하지만 이에 익숙해지면 더 이상 뇌가 그 부와 관련해 도파민을 분비하지는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확률에 베팅하고, 배 부를때 장을 보고, 질문의 의도를 의심하라

저자는 독자들에게 비합리적인 결정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합니다.

'예상 효율에 기초해 판단하라'는 조언은 흥미롭습니다. 여기 두 가지 복권 중 하나만 고를 수 있다면 어떤 복권을 선택하는게 현명할까요? '100만달러 당첨확률이 89%, 500만달러 당첨확률이 10%, 낙첨확률이 1%인 A복권' 또는 '100만달러 당첨확률이 100%인 B복권'.


저도 그러했듯 해당 심리학 실험 참가자들 다수도 B복권을 골랐습니다. '1%가능성으로 아무것도 못 받느니 보장된 100만달러를 선택하겠다'는 생각은 일견 타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예상효율 관점에서는 비합리적인 선택입니다.


A복권의 예상효용이 B복권보다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A복권의 예상효용은 139만달러입니다(100만달러x0.89+500만달러x0.10+0x0.01). B복권의 예상효용은 100만달러에 그칩니다(100만달러x1.00). 감정을 배제하고 예상효용에 근거해 판단해야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질문의 프레임을 의심하고 전환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자동차 딜러가 대리점을 찾아온 예비고객을 향해 '혹시 차를 살 계획이 있으신가요?'라고 묻지 않고 '차를 언제 살 계획이신가요?'라고 묻는 것은 당연히 예비고객에게 '나는 차를 살 거야'라는 생각을 유도하기 위함입니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는 심신이 건강한 상태가 되도록 한 뒤 결정을 하라는 조언도 유용합니다. 가깝게는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에서부터 이 원리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배고픈 상태에서 장을 보게 되면 당장 열량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기름지고 달고 자극적인 음식을 고를 가능성이 크지만, 배가 부른 상태에서 다음주를 위한 장을 본다면 신선하고 몸에 좋은 식료품을 담을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저자는 또 "생생한 것, 개인적인 것, 일화적인 것을 경계하라"고 조언합니다. 어떤 콘돔 제품 사례를 들어 공신력 있는 소비자단체의 제품 분석·평가서보다 단 한 명의 '생생한 리뷰'에 혹하는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설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스스로 합리적으로 되려고 노력하라고 조언합니다. '나는 합리적으로 판단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그 자체도 효과가 있다는 거죠.


우리는 국회의원들의 정치 공방이든, 기업들의 SNS 광고로부터든 항상 어떤 의도된 프레임을 제공받습니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여기에 쉽게 넘어가는, 클루지 덩어리인 뇌를 갖고 있습니다.


본능에 우리 인생을 내맡기기보다는 한발짝 떨어져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판단하라는 조언을 주는 책, '클루지'였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하루 2시간씩 책 읽고 글을 쓴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