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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함'에 이유가 있을 수 있을까?

2025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by 생각하는T


"심사, 특히 예심에서 중요한 것은 의외로 논리적 설득과 치열한 합의의 과정만은 아니다. ···(중략)···때로는 명쾌한 설명을 찾기 전에 직관적으로 느끼는 '이상한 좋음', 아직 채 논리화가 되지 않은 '마음의 움직임', 그런 것을 같이 발견하고 함께 설명해 가는 과정이 심사다. ···(중략)···그리고 어쩌면 심사평은 그것을 거꾸로 논리화하는 글이 아닌가 싶다."


현대문학의 70번째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부분은 심사평의 한 대목이었습니다. 안서현 평론가의 '이상하게 좋은'이라는 제목의 심사평은 문학 심사 역시 직관적인, 논리화되지 않은 마음의 움직임에 일차적으로 따른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합니다.


일상에서 우리의 마음도 그렇지 않나요. 누구를 좋아하거나 싫어하고, 어떤 것에 호감이 가거나 경멸스러워하거나... 그것에는 마음의 즉각적인 움직임이 우선이고 그 후 우리는 그 이유를 찾아나갑니다.


뒤늦게 그 친구는 성실한 점이 좋다거나 진취적인 점이 좋다거나 이유를 대지만, 첫인상이 그 상대를 평가할 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심리학 연구들은 우리 마음은 즉각적인 판단을 이미 내린다는 근거를 제공합니다.


'2025년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은 올해 수상작인 김지연 작가의 '좋아하는 마음 없이'와 그의 자선작 '우리가 바닷속을 지날 때'와 수상후보작인 구병모 작가의 '엄마의 완성', 권여선 작가의 '헛꽃', 송지현 작가의 '유령이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이주혜 작가의 '괄호 밖은 안녕', 최진영 작가의 '울루루-카타추타'를 담았습니다.


수상작 역시 '좋아함'에 대해 다룬 소설입니다. 어렸을 때는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자 친구들이 싫어하면 남몰래 흠모하던 남자 선생님마저 따라서 싫어하려고 애쓸 정도로 '좋아함'에 있어 주관이 없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심사평들은 이 작품에 대해 "좋아하는 마음 없이 사는 가족을 더 이상 원치 않는 마음 사이에서 독자들은 또 한 번 멈춘다" "결말을 산뜻하게 풀어냈다"라고 평가합니다.


다만 저로서는 그 주인공을 떠난 첫 남편에 오히려 공감이 갑니다. 애당초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없이 결혼한 것도 그렇지만, 매사에는 물론 자기 자식에게까지 그다지 애정 없이 사는 그런 사람과 같이 산다면, 저 자신도 힘이 빠질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마음 없이' '우리가 바닷속을 지날 때'에서 김지연 작가가 그려낸 주인공들은 모두 그런 관조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그런 주인공들의 주변인물로 지낸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갑갑하네요(물론 남편의 불륜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권여선 작가의 '헛꽃'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주변 사람들을 위해 강박적으로 희생하는 데, 주변 사람들은 그런 헌신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에게 '헛꽃'이라느니 '헹멩'이라느니 조롱만 합니다. 헛꽃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꽃으로 참꽃과 대비되는데, 레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소냐가 헛꽃으로 조롱당합니다.


끊임없이 헌신을 하면서도 그것을 남들로부터 인정받기를 바라지도 않는 주인공과 그에게 감사는커녕 조소만 보내는 주변 인물들의 모습은 너무 현실적이라 슬프기까지 합니다.


문학작품집이라는 특성상 이들에게서 어떤 하나의 메시지를 억지로 짜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문학의 위대함은 내가 아닌 다른 인물들의 상황과 입장이 돼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남편과 결혼한 불륜녀로부터 보험금을 달라는 요청을 받은 여성, 서로에게 어떤 벽이 생긴 커플, 폐경기 언저리에 있는 엄마와 그 딸, 가족에게 헌신하고도 냉대만 받는 여성, 1년 전 죽은 자신을 추억하는 연인과 가족을 바라보는 이, 해석에서 벗어나고자 여행을 떠난 번역가, 어떤 아이를 구하려다 사고를 당한 남편과 사별하고 그를 기억하며 아들과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가 담긴 '2025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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