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0년 전 병법가 손자의 '손자병법'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잘된 용병이고, 백전백승은 잘 된 용병이 아니다"
중국 춘추시대인 기원전 6세기, 지금의 중국 상하이·난징·옌창 지역 일대를 차지하고 있던 '2등국' 오나라(吳)의 병법가 손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강조했습니다. 봉건제를 실시하던 주나라(周, 기원전 1046년 ~ 기원전 256년) '천자'가 힘을 잃고 각지의 제후들이 패권을 다투던 시대에 손자는 전쟁이 민생에 끼치는 악영향을 경계했습니다. 최대한 싸우지 않고, 전쟁을 하게 된다면 속전속결로 끝낼 것을 강조한 것이지요.
손자는 본래 '1등국' 중 하나인 제나라(濟)의 장수 집안에서 태어납니다. 여기서 1등국은 제나라를 포함해 초, 진(秦) 등 춘추시대 초기 일어난 국가들을 뜻합니다. 이보다 늦게 일어난 오, 월, 정, 위 등은 2등국에 속했고 진(陣), 채, 조는 3등국에 속했습니다. 여기까지가 패주가 소집하는 대회맹에 참석할 수 있는 열국(列國)이었습니다.
손자는 이미 강국인 고향 제나라에서 성공하는 것보다는 '스타트업' 오나라에서 출세하는 데 베팅을 합니다. 자신이 저술한 '손자병법'을 오나라 왕 합려에게 바치고 장수가 돼 오나라를 방귀 좀 뀌는 제후국 반열에 올려놓습니다.
우리가 손자병법을 접할 때 알아야 할 시대 구분이 있습니다(상식일 수도 있지만 저는 잘 몰랐던 것이라 정리하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ㅇ주요 시대구분
-손자병법 저술(기원전 6세기. 춘추시대)
-진시황제의 전국통일(기원전 259년)
-유방의 통일국가 한나라 건국(기원전 202년)
-위·촉·오 삼국시대(기원후 220년 위 건국)
이 시대 구분을 알아야 하는 것은 손자병법 그 자체는 전국시대의 수많은 전쟁들, 유방과 항우의 초한전쟁, 삼국지의 적벽대전 등의 사례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전에 편찬됐으니 당연하지요. 하지만 손자병법을 응용한 전투와 전쟁이 많기 때문에 중국 고대사를 잘 모르는 독자로서는 '적벽대전 내용이 손자병법에 담겼구나'라는 착각을 할 수 있지요.
손자병법은 저술 이후 2600여 년간 꾸준히 인기가 많아 많은 판본이 제작됐는데요. 이 중에서 가장 많이 통용되는 판본은 조조(우리가 아는 삼국시대 조나라 조조 맞습니다)가 주석을 단 것을 토대로 하는 것입니다.
다시 손자의 '싸움의 피해를 줄이자' 원칙으로 돌아가 봅시다.
"상책의 용병은 모략을 공략하는 것이며, 차선책은 외교관계를 공격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군대를 공격하는 것이며, 최하의 방법은 성을 공격하는 것이다"
손자는 간첩을 활용하는 것을 강조했는데 이 같은 정보전은 현대에 들어설수록 더 의미가 강해졌지요. 아는 것과 속이는 것 이 두 가지는 손자병법에서 승리의 핵심 요건으로 꼽힙니다.
승리를 아는 다섯 가지
1. 싸워야 할 때는 아는 것과 싸워서는 안 될 때를 아는 자
2. 병력이 많고 적음에 따라 용병법을 아는 자
3. 장수와 병사가 한마음이 되는 자
4. 준비하고 있으면서 준비하지 못한 적을 기다리는 자
5. 장수가 유능하고 군주가 조종하려고 들지 않는 자
손자는 또한 경제력과 전쟁의 관련성에 집중한 병법가였습니다. 그는 "10만 명의 군사를 동원하려면 가장 먼저 충분한 물질적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라고 썼습니다. 승리한 군대와 패배한 군대의 배경에는 국가의 경제력과 군사력 같은 객관적 요소가 차이가 있고 이를 비교 분석한 뒤에 비로소 전쟁에 나설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이겨놓고 싸움을 시작한다(싸우는 조건을 완비해 놓고 전쟁에 나선다)"는 전략의 기원이라고도 볼 수 있지요.
빠르게 이 책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관점과 또 한계에 대해 제 생각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손자병법이라는 고전은 현대인들도 참고할 시대를 관통할 인간에 대한 이해를 담고 있습니다. 가령 "먼저 전쟁터에 터를 잡고 적을 기다리는 자는 여유가 있고, (적보다) 늦게 전쟁터에 터를 잡고 전투에 달려 나가는 자는 피로하다"는 내용은 비즈니스 협상론에서도 응용을 할 수 있지요.
손자병법은 적의 동태 33가지 항목으로부터 정보를 파악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상대의 행동으로부터 정보를 도출해 내고 이를 활용해 대비하는 데 영감을 얻을 수 있겠네요.
한나라 한신의 '배수진' 전략도 현대에서 즐겨 쓰는 전략 중 하나입니다(한신이 손자 이후의 사람이니 배수진은 한신이 손자병법을 응용한 사례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지요).
그리고 사전 그대로의 의미에서 전투에서도 잔혹하지만 이런 논리가 통용될 수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장군이 작전을 수립할 때 아랫사람이 속내를 쉽게 알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전쟁을 앞둔 병사는 싸움에서 아무 생각 없이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2600여 년 전 상황에 맞춰 말 그대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만든 병법서인 만큼 시대가 바뀐 만큼 그 한계도 분명히 있습니다. 가령 손자병법은 화약(10세기 발명)이 중국에서 만들어지기 1600 년전 쓰인 책입니다. 화공에 대해 다루지만 대포도 없던 시대에 쓰인 책이니 10세기만 해도 전술책으로서의 의미는 크게 퇴색됐을 겁니다.
하물며 이를 지금 시대에 비즈니스 전략에 일대일로 대입하는 것은 무용할 것입니다.
고전이라고 꼭 그 명성만큼 독자에게 가치 있는 메시지를 주지는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손자병법을 읽으며 자주 했습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나 영감을 얻어 낼 수는 있겠지만, 2600년 전 방식으로 전쟁을 하지도 할 이유도 없는 지금, 협상 전략이나 인간관계에 관한 영감을 얻기 위해서라면 현대의 전문가들이 쓴 책을 읽는 것이 가성비가 좋을 것이니까요.
저 같은 독자를 염두에 뒀는지 이 책을 옮긴 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도 이렇게 강조합니다.
"고전을 고전답게 읽어야 한다. 이 책은 현대 경영의 시각에서 권모술수라는 측면에 과도하게 결부해 읽지 말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