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 고딘의 '린치핀'
시키는 대로만 일하는 곳 '공장'으로 정의
"매뉴얼 대로만 일하면 대체가능 톱니바퀴
차이 만들고 사람 연결하는 린치핀 될 것" 제시
린치핀 요건으로 자발적 감정노동 꼽지만
"선물은 대가 바라선 안 된다" 도덕론에 빠져
프로테스탄트 직업윤리와 '혁신 중독' 결합해
설교 이어가나 사례·연구 빈약해 설득력 낮아
'혁신무새'와 프로테스탄트 직업윤리의 혼종
"직장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공장의 부품으로 전락시키는 행위다. 자발적으로 감정노동을 하고 매뉴얼 그 이상의 작업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린치핀(원래 뜻은 수레에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으로 만들어라. 이는 자신을 '예술가'로 만드는 행위이니 이 자체를 추구하고, 다른 대가를 바라지는 마라."
'린치핀'에서 제시되는 주장을 아주 짧게 정리하면 이 정도로 보입니다. '세계적 마케팅 전략가'로 소개되는 세스 고딘은 사람들이 노동을 통해 일상에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에 대한 접근이 '나는 오늘도 지겨운 일을 반복한다'라고 여기는 것과 '나는 오늘도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출하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사람들을 연결함으로써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고 있다'라고 여기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지요.
하지만 '선물을 주면서 대가를 바라지 말라'는 저자의 주장은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 저자는 "린치핀이 되어라"라고 주장하는데, '왜 린치핀이 되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납득할만한 대답은 제시하지 못합니다.
린치핀이 되면 이로 인해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거나, 승진을 하거나, 사업체를 꾸려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식의 흐름이 있어야 하는데, 저자는 "선물은 대가를 바라는 순간 이미 선물이 아니다"라는 도덕론을 견지합니다. 스스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가치를 창출했다는 자체에 만족하라는 태도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에 반발이 든다면 이는 당신이 자본주의 체제에 너무 찌들었다는 증거라고 몰아붙이는데, 저자가 사는 미국도 그렇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데 사회주의 혁명을 하지 않을 거라면 이에 맞춰 사는 게 당연한 것이지요.
또한 저자는 지금 시대가 바뀌어 '공장의 톱니바퀴'로서는 높은 가치 창출을 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지난 20세기는 톱니바퀴로서도 충분히 노동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지요. 헨리 포드가 1913년 컨베이어벨트를 사용한 포드T 모델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한 이후 포드주의가 한때 지구를 잠식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새 시대가 도래했다'는 저자의 인식은 서유럽에서 근대가 시작된 이후 지겹도록 반복되는 관념입니다. 근대를 뜻하는 모던(Modern)의 어원 역시 현대, 최신, 새로운 등을 뜻하는 라틴어 modernus입니다. 서유럽의 제국주의를 통해 전세계로 모더니즘이 뻗어 나갔던 만큼, 그 이후 세계는 늘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지요.
저자의 '시대가 변했으니 여기에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은, 1998년 마크 스펜서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가 출간됐을 때와 비교해 한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진부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불친절한 설교자'에 가깝습니다. 책 분량은 463쪽에 이르는데 이중 구체적인 사례 제시나 연구나 통계 인용은 매우 적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이란, 바뀌지 않는 것을 바꾸는 일은 자신의 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다"라는 식의, 주장들입니다.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기보다는 주장 1+주장 2+주장 3...의 식으로 주장을 이어갑니다.
총평. 결국 저에게 있어 이 책은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편집증적인 인식을 가진 제1세계의 설교자형 인간이 쓴 현대판 '프로테스탄트 직업윤리'입니다.
"매뉴얼 외의 일이 진짜 일"이라는 시각
책 전반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평가를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에서 참고할 만한 인식은 몇 가지 있습니다.
-남들과 다른 차이를 만드는 선택을 할 것
-현재 우리가 따르는 규칙은 200년 전에 만들어진 것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일하는 곳도 결국 공장일뿐
-감정노동을 할 것. 꼭 필요한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절차는 매뉴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렇기에 린치핀의 가치가 높다
-자신이 하는 일을 마음만 먹으면 작업으로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린치핀이 되는 법이다. "일은 작업과 다르다"
-우선 1년에 중요한 작품을 하나씩만 만들겠다고 계획하고, 그것을 작은 프로젝트로 쪼개라. 그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매일의 임무를 세 가지씩 설정하고, 일하는 시간에 그것만 하라.
저는 통상 그 책이 아무리 별로더라도 그 책에서 배울 점을 찾는데 초점을 두는데(그래야 독자로서 남는 게 있으니까요), 이 책은 리뷰에서 전반적으로 비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책을 직접 읽기보다는 유튜브 채널 '조승연의 탐구생활' 리뷰를 보는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