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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따뜻해지며 세계사는 바뀌었다

이코노미스트 홍춘옥의 '7대 이슈로 보는 돈의 역사 2'

by 생각하는T

이코노미스트 홍춘옥은 복잡한 경제 원리를 역사와 시사를 통해 쉽게 풀어내는 데 탁월합니다. 제가 그의 책을 애독하는 이유입니다.


'7대 이슈로 보는 돈의 역사 2'는 화폐, 전염병, 기후변화, 경쟁, 신뢰, 금융위기, 갈등 등 7개 키워드를 제시하며 경제 원리를 설명합니다.


사실 이 책을 읽을 때는 이 키워드를 그렇게 신경 쓰지 않고 읽었는데, 읽고 난 뒤 이 책의 내용을 복기하고 저자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는지를 파악하는데 이 키워드들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7개 파트에는 부제가 달려있는데, 이 부제와 키워드를 연결하면 됩니다.


1. 신안 보물섬의 비밀-화폐

1975년 8월 전남 신안 증도 앞바다에서는 '보물선'이 발견돼 9년여에 걸쳐 인양작업이 이뤄집니다. 이 보물선은 1323년 중국 원나라 때 저장성 닝보항에서 일본 규슈 후쿠오카 하카타로 향하던 중 난파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화폐 수요가 높아졌지만 교토의 조정이나 가마쿠라 막부가 독자적으로 화폐를 발행하지 않던 까닭에, 중국 송나라 때 쓰던 동전 '송전'을 수입해 쓰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중국이 송나라 시절 고도의 화폐경제가 발달해 있었고 일본이 송나라의 화폐를 가져다 썼듯 화폐는 꼭 해당 주권국에서 발행될 필요가 없다는 역사적 사례를 소개합니다. 이와 함께 화폐의 부족이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경제 원리를 설명합니다.


2. 전염병이 번질 때, 경제는 어떤 변화를 겪을까?-전염병

이 책이 써졌을 당시가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참이었기에 이 키워드를 넣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자는 유럽 중세의 흑사병이 어떻게 대항해시대를 야기했는지 설명합니다. 흑사병으로 인구가 급감하자 임금은 빠르게 상승했고 이에 따라 생필품 물가는 떨어집니다. 1인당 경제력이 늘자 후추, 설탕과 같은 사치재 수요는 늘었고 이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유럽의 귀금속 유출이 심해집니다. 유럽 국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한 데에는 고갈된 금과 은을 보충하려는 경제적 목적이 컸습니다.


저자는 또 말라리아로 인해 아메리카 원주민을 노동력으로 활용하지 못하게 된 유럽 사람들이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끌고 온 점, 감자마름병으로 아사 상황에 놓인 아일랜드인들이 19세기 중반 미국으로 대거 이주한 점, 1918년 미국에서 스페인 독감이 유행한 뒤 외집단에 거부감이 높아진 뒤 제정된 '이민법(이민 제한법)' 영향으로 경제성장률이 감소하는 한편 경제 불평등은 완화됐다는 점을 짚습니다.


3. 기후변화가 바꾼 역사의 분기점-기후변화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있었던 것은 '기후변화'입니다. 인류의 위기라는 큰 차원에서 관심이 가야 하겠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올여름 계획했던 스페인 여행을 유럽 폭염으로 인해 미루게 됐던 터였던 점이 더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구는 1000년 이내의 비교적 짧은 시기에도 상당한 기후변화를 보여왔고 이는 역사에도 큰 영향이 미칩니다. 9세기 무렵 바이킹들이 스칸디나비아를 벗어나 유럽 각지에서부터 멀리는 그린란드와 아메리카 대륙으로까지 나아간 배경에는 900년대 후반부터 1300년대 초까지의 '중세 온난기'가 있었다고 짚습니다. 평균 기온이 그 이전보다 1~2도가 오른 것인데, 이로 인해 식량 생산이 늘며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던 것이죠(유럽 인구는 1000년경 3000만명 선에서 1340년 7400만명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유럽은 1300년대 중반~1700년대 다시 기온이 2도 정도 내려가는 소빙하기를 맞고, 19세기부터 기온이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중국은 12세기부터 북방 민족이 한족(漢族) 국가를 침범하는 일이 반복됐는데, 이에는 환경 파괴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흉노 세력을 꺾은 한나라 무제는 기원전 119년만 황허강 하류 지역에 살고 있던 70만여명의 사람을 현재의 네이멍구자치구 지역으로 이주시킵니다.


이렇게 이주한 사람들은 반건조 지역의 초원지대에 계단밭을 만들어 윤작을 합니다. 비가 자주 오지 않는 지역에서 시행된 이 같은 방식의 농업은 상류 지방의 삼림과 표토를 상실시켰고, 이는 가뭄과 홍수의 빈발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설입니다. 환경 파괴가 누적돼 자체적으로 먹고살기 어려워지면서 북방 민족이 중국 한족 국가를 본격적으로 침략하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4. 왜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나?-경쟁

15세기까지만 해도 동양의 군사력이 서양에 앞섰다고 평가됩니다. 1241년 발슈타트 전투에서 몽골 제국은 폴란드와 독일 기사단을 제패했는데, 당시 오고타이칸이 급작스럽게 사망하지 않았다면 몽골이 유럽 전역을 침략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15세기 오스만제국은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토플(지금의 이스탄불)을 함락했고, 베네치아가 지배하던 그리스 남부 네그로폰테마저 수중에 넣습니다.


하지만 1세기 만에 전세가 역전돼 1509년에는 포르투갈이 다우 해전에서 오스만 해군을 쳐부수고, 1529년 오스트리아는 빈을 침략하려는 오스만 제국 군을 패퇴시킵니다.


저자는 그 배경에 중국에서 발명된 화약을 바탕으로 유럽이 대포 기술을 크게 발달시켰고, 제식 훈련을 통한 군사 혁명을 일으켰다는 점을 짚습니다. 유럽은 프랑스, 스페인, 영국 등 규모가 비슷비슷한 국가체들이 경쟁을 하고 있어서 군사 기술을 꾸준히 발전시켰다는 지적입니다.


5. 금융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신뢰

은행을 비롯한 금융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경영하기 위한 조건인 신뢰를 설명합니다. 영국이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 불릴 정도로 강대국으로 성장했던 것에도 신뢰 있는 금융 정책이 자리합니다.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영국 정부는 주화의 품질 유지를 위해 '주화의 불건전한 상태를 치료하기 위한 법'을 제정합니다. 테두리가 깎여 나간 주화의 유통과 사용을 금지하고, 낡은 주화의 사용을 금지시킵니다. 돈의 품질에 대한 신뢰는 신용 경제의 싹을 틔웁니다. 1694년에는 영란은행 설립을 허가해 화폐 발행권을 줍니다. 이 같은 자금 조달력은 상비군 운영과 훈련을 가능케 했지요.


반면 2009년 북한과 2016년 인도에서 있었던 시간제한이 크고 환전 규모에 제약이 많은 엉성한 화폐개혁은 그 나라 국민들로 하여금 국가 화폐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금이나 달러 등에 의지하게 만드는 악효과를 가져옵니다.


6.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발생 원인은? 금융위기

여기서부터가 현대인에게 직접적으로 거시경제 흐름은 어떻게 운영되고,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부를 유지하거나 키울 수 있을까 직접 접목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금융위기의 배경에는 여러 금융 규제 완화가 있었습니다. 1999년 미국에서는 서로 다른 금융업종 간의 상호진출을 금했던 글래스 스티걸법이 폐지되며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간 업무 경계가 사라집니다. 이를 계기로 전 세계 은행들이 대출 유동화 전략을 적극 추진합니다. 가령 미국 전역에서 각 10만달러 규모의 부동산 담보대출을 1만건 한 다음, 이를 묶어서 하나의 채권(주택저당증권·MBS)으로 만드는 것이죠. 대출 심사도 간소화합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부동산 대출은 점점 부실화됩니다. NINJA(No Income No Job) 대출이라는 말이 등장하죠.


미국에서 제조업의 몰락과 함께 불평등이 심화되던 상황을 '부동산 경기'로 만회하려던 미국 정치권의 모습도 금융위기의 배경이었습니다. 좋은 일자리가 없어지며 중산층 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주택을 사고 그 집값이 오르는 것으로 부를 만들 수 있는 현상을 방치한 것이죠. 이런 배경을 두고 미국 은행들은 신용도가 떨어지는 고객들에게도 주택담보대출-서브 프라임 대출-을 시작합니다.


미국 은행들은 높은 이자를 갚은 수 없는 저신용 고객들을 위해 2년간 무이자 혜택을 부과하는데, 고객들은 '2년 뒤 집값이 오르면 팔아야지'하는 마음으로 대출을 받아 집을 삽니다. 문제는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2007년, 서브프라임 대출 고객들이 무이자 기간 2년이 끝나자마자 주택을 팔아치운 데다, 그 사이 오른 정책금리가 부담된 실수요자들도 매물을 내놓으면서 부동산 시작이 꺾입니다. 2008~2009년에는 미국 주택 가격은 해마다 5% 이상 떨어집니다. 2008년 9월 서브 프라임 대출 관련 상품을 많이 들고 있던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죠.


7. 미·중 무역분쟁의 근원과 우리의 대응 방법은? 갈등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집권과 함께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더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관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현재 쏟아져 나오는 뉴스가 더 구체적이고 현재와 밀접한 내용들이고, 이 책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미국이 본격적으로 중국을 때리기 시작한 동기입니다.


저자는 자국 내 제조업 몰락으로 미국 내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점, 미국의 셰일오일 혁명으로 중동 지역을 비롯해서 미국이 안정적인 원유 수급을 위해 세계 경찰을 할 유인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 마지막 대목, 우리나라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이슈인 미중 갈등에 대해 내놓는 저자의 해법은 원론적입니다. 중국의 추격에 맞서 연구개발에 적극 투자하고, 중국 내수시장 개방에 맞춰 현지에 특화한 신제품을 개발하자는 것.


먼 과거의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종합적 분석을 할 수 있지만, 당장의 우리 현실에 대해서는 전체적인 조망을 하기 어렵습니다. 현실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역사에서의 경제 원리를 살펴보고, 우리의 경제 현실은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지 궁리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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