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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지상주의의 세계 그리고 페미니즘

문학동네의 '2025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by 생각하는T


20대의 저는 여름을 보내는 일종의 의식이 있었습니다.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새벽까지 단편영화를 연속으로 상영하는 심야상영회에서 밤 새기와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여해 독립연극을 주야장천 관람하기가 그것이었습니다. 독립예술을 관람하는 것도 좋았지만, 그냥 그 축제에 참여한다는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여름 나기 의식이 하나 있습니다. 3년 전부터 여름휴가마다 그해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습니다.


평소에는 소설을 잘 읽지 않으니 휴가 때라도 읽자는 단순한 생각에 시작된 행동이었습니다. 수많은 문학상 중에서 '젊은작가상'을 고른 것은 책 가격이 7700원으로 저렴하다는 이유가 제일 컸습니다. 정가는 1만5000원이지만 젊은 작가를 널리 알린다는 의미에서 출간 1년간은 반값에 판매하기 때문이죠.


주최사가 문학동네라는 인지도 있는 출판사라는 점과 '등단 10년 이내의 젊은 작가'에게 주는 상이라는 점도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올해에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한 권을 배낭에 넣은 채 여름휴가를 떠났습니다(글을 다 쓰고 보니 제가 작년 이맘때 2024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리뷰를 쓰면서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만, 어떻게 이렇게 똑같이 쓸 수 있을까 신기하기도 하여 그대로 남깁니다).


올해의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은 △백온유 작가의 '반의반의 반' △강보라 작가의 '바우어의 정원' △서장원 작가의 '리틀 프라이드' △성해나 작가의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성혜령 작가의 '원경' △이희주 작가의 '최애의 아이' △현호정 작가의 '~~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 등 7편입니다.


단편소설 7편을 모두 정리하자면 글에 성의가 없어질 것 테고, 줄거리를 요약해 올리는 것도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인상 깊었던 몇 편에 대한 감상을 짧막히 적겠습니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은 '리틀 프라이드'입니다. 이 소설은 입체적인 등장인물 설정만으로도 얼마나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줬습니다.


소설에는 두 명의 소수자(왜소한 남성)가 등장합니다. '나'인 토미와 주요 등장인물인 '오스틴'이 그들입니다. 먼저 토미는 F2M(Female to Male), 여성에서 남성으로 전환환 트랜스젠더입니다. 그토록 바라던 성전환 수술을 했지만 체격이 커지는 수술은 아닌지라 164cm의 작은 남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직장 동료들에게는 그 사실을 숨긴 채로요.


오스틴은 뛰어난 패션감각과 입담을 가졌지만 토미보다도 키가 작은, 말 그대로 '작은 남자'입니다.


외모지상주의의 세상에서 약자인 이들입니다.


두 인물은 같은 구제 패션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동료 사이입니다. 오스틴은 회사의 창립 멤버이자 '대체불가' 직원입니다. 오스틴이 카메라를 들고 길거리를 다니며 뛰어난 구제 패션 피플들을 인터뷰하는 SNS영상 코너가 히트를 치며 그의 회사 홍보에 톡톡히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스틴은 작은 키로 열등감에 시달리죠. 그가 인터뷰하는 젊은 남녀들은 늘 큰 키에 좋은 몸매를 지킨 훈남훈녀들인데, 오스틴의 재치 있는 입담은 그가 가질 수 없는 육체적 매력을 커버하기 위한 생존전략처럼 보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대시를 거부하는 여성에게는 "페미(페미니스트)라서 그런 거다"라며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페미니즘 혐오적인 모습도 보이는 인물입니다.


"우리는 같은 부류 아니냐"는 작은 남자 오스틴과, "우리는 전혀 다르다"며 그와 선을 그으려는 F2M 트랜스젠더 토미의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독자로서 제게는 이 오스틴이라는 인물이 너무도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번 수상작품 중에는 '마라맛 소설'들이 많았습니다. 덕질 문화에 이용해 남성 아이돌의 정자 공유 사업을 명목으로 인구 증가 사업을 실시하는 가상의 국가와 그에 편승해 아이돌의 아름다움을 출산이라는 방식으로 소유하고자 한 여성 팬을 그린 '최애의 아이'는 단연 문제작입니다. 멋진 외모에 근사한 취향까지 가진 스타 남성 영화감독의 아동학대를 합리화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인 여성 팬의 모습을 담은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대상을 받은 '반의반의 반'은 너무 젊잖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여성 3대(代)가 등장하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단연 노년의 영실입니다. 젊어서부터 배우 닮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외모가 빼어났고 기품과 강단이 있는 있는 영실은, 통상의 어머니나 할머니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사별한 남편의 사망보험금을 현금으로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딸 윤미가 간통죄로 감옥에 가게 됐는데도 합의금을 지원하지 않고 징역형을 살다 나오게 한, 전통적인 모성애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입니다.


주위 사람들은 물론 딸 윤미와 손녀 현진은 영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동경하는데 비해, 영실은 딸과 손녀에게 엄격한 모습으로 일관합니다. 그런 그가 치매 초기 증상을 앓으며 고용한 간병인 수경에게는 유독 한없는 애정과 믿음을 보입니다. 수경이 자신의 남편 사망보험금을 훔쳐간 것이 유력한 상황에서도요.


제목부터 난해한 '~~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은, 앞으로 이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더 읽는 게 맞는 걸까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먼 과거인지 미래의 일인지 모를, 지구가 바다에 잠겨 인류가 자생체와 기생체라는 기형쌍둥이의 조합으로 변했을 때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랑자와 그의 이야기를 듣는 카페 직원 '나'가 등장합니다.


지금껏 젊은작가상 수상집은 최근 3년간의 작품집을 읽은 게 전부이지만 이 상의 어떤 경향성이 이제 눈에 들어옵니다.


먼저 수년간 이 상을 반복해 받는 작가들이 꽤 있다는 점입니다. 낯이 익어 찾아보니 올해 수상한 성해나, 성해령 작가는 각각 작년과 재작년에 이 상을 수상했습니다.


김멜라 작가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 연속 수상을 했습니다. 알고 보니 문학동네라는 출판사는 자기 출판사가 내세우는 작가들을 집중적으로 키우려는 '문단주의'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또 하나는 지난해에 이어 '팬덤' '덕질'을 다룬 소설이 계속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K팝을 비롯한 대중문화와 함께 팬덤 문화도 그만큼 커졌다는 방증이겠죠.


다소 뻔한 내용이긴 하지만 페미니즘이 적어도 '젊은작가상'에서는 주류라는 점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주류라는 말로는 현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고, 페미니즘 일변도라 도리어 문학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이 문학상이 '페미니즘 작가상'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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