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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중국·일본과 달리 유교와 단절하지 못했다"

김경일 교수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by 생각하는T
왕권 강화·조상신 숭배의 산물 유교
무결점주의와 수직적 윤리 낳아
中 공산당 집권·日 메이지유신 때 단절
한국은 여전히 문화적 '漢 속국'
1999년 책에 담긴 한국 사회 비판론
민족주의 등 2025년에도 여전해


지나친 패배주의 시각도 엿보여

"유교는 고대 중국 은나라, 주나라 때 왕실의 제례를 주관하던 무당(儒)들이 만든 왕권강화 이념을 후세대 사람인 공자가 집성한 '사기극'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때, 중국은 공산당 집권 후 유교와 단절하고 합리적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데, 한국은 여전히 정신적으로 '한나라의 속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99년 김경일 당시 상명대 중어중문학과 교수가 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의 핵심 메시지는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2025년 8월 현재 상명대에 해당 학과는 없고 중국어권지역학전공이 운영되고 있는데, 김 교수는 교수진 명단에 없습니다).


지금 봐도 '마라 맛' 글이죠. 사반세기 전, 유교계의 힘이 아직 남아있던 당시 한국 사회에서의 충격은 더 컸던 것 같습니다. 1999년 기사를 찾아보니 당시 한국한시협회가 '김경일 교수 성토 백일장'을 열 정도로 유림의 반발은 컸습니다.


김 교수는 기원전 16세기 중국 갑골문을 연구해 온 학자로서 유교의 기원을 파헤칩니다. 유교의 기원은 공자(기원전 551년 ~ 기원전 479년)가 태어나기 1000년 전 고대 은나라, 주나라에서 생겨났다고 본 것이죠.


기원전 1324년경 중국의 황화 유역 은나라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납니다. 은나라 왕 무정은 왕위를 큰아들인 조강에게 물려줬는데, 똑똑한 둘째 아들 조갑이 왕위를 찬탈한 것이죠.


정통성이 약했던 조갑은 자신의 직계 혈족을 '조상신'으로 신격화하며 왕권강화에 나섭니다. 일반적인 고대 사회가 그랬든 당시 중국 지역도 토테미즘, 애니미즘, 샤머니즘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조갑은 자신의 조상신만을 유일한 신령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와 함께 조갑은 조상들의 족보를 재수정합니다.


그리고 300여 년 후, 주나라 무왕은 은나라를 물리치고 중원의 패권을 차지합니다(기원전 1046년). 주나라 역시 은나라와 같이 제례 전문가 유(儒)를 통한 통치 스타일을 유지합니다.


유들은 주나라 왕통 족보를 다듬고 이에 더해 새로운 초월적 존재 '하늘(天)'을 제시합니다. 다른 부족과도 공통으로 숭배할 수 있는 하늘을 절대신으로 삼고, 주나라 왕만이 하늘의 아들(天子)이라며 지배를 합리화한 것이죠.


이로부터 다시 500여 년이 지난 춘추시대 노나라에서 공자가 태어납니다. 공자는 주나라 종법 제도를 가르치면서 이것이 완벽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은나라의 모든 역사적, 정치적 사건들을 미화합니다. 검증이 불가능한 500~1000년 전 인물들을 내세워 논쟁의 싹을 잘라버린 것이죠.


다시 500여 년이 뒤, 중국을 다시 통일한 한나라는 통치이념으로 공자의 가르침을 채택합니다. 직전 왕조인 진나라의 시황제가 법가를 이념으로 삼은 것과 대비되죠. 한나라 무제 시절 등용된 동중서는 '대일통론'을 제시합니다. 천자는 하늘로부터 명을 받았기에 제후는 천자로부터 명을 받아야 하고 이와 마찬가지로 아들은 아버지의, 아내는 남편의 명을 받아야 한다는 수직적 위계를 명확히 한 것이죠.


그리고 다시 1100여 년이 흐른 뒤 송나라에서 주자가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체계화해 '존왕양이'를 강조한 주자학을 만들죠.


저자는 "공자의 가르침은 과거 무결점주의, 조상 숭배, 수직 윤리, 인과 의 정도"라며 한국 사회의 수많은 병폐가 유교 문화와 단절하지 못해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우선적으로 유교의 폐해는 과거 무결점주의와 그에 따른 토론의 부재입니다. 오류를 인정하지 못하는 풍토 속에서 '가짜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는 지적이죠. 2025년 지금도 상사의 말에 토를 달지 못하는 한국의 기업 문화는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온고지신 사상에 대해서도 비판합니다. 새로운 것은 새로운 곳에 있는데, 유교문화권에서는 자꾸 옛것에서 교훈을 얻으려 하죠. 이런 뒤돌아보기 문화가 미래를 지향하는 현대인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입니다.


그의 비판은 매섭고 2025년의 한국에도 유효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민주주의와 자유 자본주의의 옷을 걸치고 있을 뿐 본질적으로는 3000년 전 원시 가부장 시대의 의사결정 구조를 조금도 바꾸지 못하고 있다"


책의 중간중간에는 반박할 만한 내용도 있긴 합니다. 가령 서양도 기독교 지배 체제에서는 교회의 무결점주의가 팽배했던 만큼, 중세까지의 이런 엄격한 상하관계는 전지구적 현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동아시아에 유교가 없었더라도 다른 이념이 상명하복의 사회를 만들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유교에 대한 저자의 비판 전반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편입니다.


이 책은 비판 유교에 대한 비판만 담지는 않습니다. 크게 △한국인으로 사는 열 가지 괴로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일본이여 들어오라! 중국이여 기다려라! △공부는 끝났다 △한국인을 넘어서 등 5가지 챕터로 구성돼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이 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의 공통 주제입니다. 저자의 비판은 실랄합니다. 단일민족에 대한 집착, 모두가 양반 족보를 내거는 현상, 지독한 학벌주의, 국가주의와 애국주의, 문화 순수주의, 지역주의를 전방위적으로 비판합니다.


다만 이 책이 나온 지 26년 뒤인 2025년 시점에서 보기에 저자의 한국관은 지나치게 부정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책에서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일본 문화의 파워와 세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한국 대중문화를 비교했는데, K-팝을 비롯해 드라마, 음식 등 한국 문화가 세계인에게 이렇게 소구 됐을 거라 상상도 못 했던 것 같습니다.


"한국인을 넘어서자"라는 이 책의 메시지에는 21세기를 코앞에 두고도 국가주의, 애국주의에서 한치도 못 벗어나지 못했던 조국에 답답함을 가진 지식인의 모습이 투영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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