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브링클리 교수의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 3'
지난달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아메리카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한 뒤 우리나라 여론의 반응은 '황당하다'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 체제가 강고한 미국에서, 미국 밖에서 태어나 자신 스스로는 대통령 선거에 나갈 수 없는 일론 머스크가 신당을 창당한다한들 승산이 없다는 분석이었습니다.
이런 분석과 함께 '주(州) 별 승자독식 체제에서 제3당이 선거인단 표를 획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식의 해설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이제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익숙해졌듯이 미국 대통령 선거는 각 주에 배당된 선거인단 538명을 많이 확보하는 후보가 승리하고, 1위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 전체를 가져갑니다. 2016년 대선에서도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보다 약 280만 표를 더 얻었지만, 선거인단 수에서 뒤져 패배했죠).
그러면서 1992년 대선에서 기업인 로스 페로가 제3후보로 출마해 일반 투표에서는 18.9%를 득표하며 돌풍을 일으켰지만 선거인단은 단 1명도 확보하지 못했던 사례가 대표적으로 소개됐습니다.
하지만 미국 역사에 제3당 후보가 선거인단을 확보한 사례가 분명히 있습니다. 1968년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독립당의 조지 윌리스 후보는 일반 투표에서 13.5%를 득표하고 앨라배마, 아칸소, 조지아,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등 미국 남동부에 위치한 5개 주에서 승리해 선거인단 46명을 확보했습니다. 비록 당시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이었지만 조지 윌리스는 제3당 후보로서 의미 있는 결과를 낸 것이죠.
앨런 브링클리 컬럼비아대학교 교수가 쓴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 3-제1차세계대전에서 9.11까지'를 최근 읽으며 일론 머스크의 신당 창당 에피소드가 떠올랐습니다. 지난달에는 그저 방송에 나오는 해설만 들었지만, 20세기 초부터 2004년까지의 선거 결과를 보니 미국 선거는 생각보다 역동적이었습니다. 제3당 후보도 꽤 자주 대선에 출마했고요.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는 미국 건국 이전부터 2004년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다룹니다. 뭐랄까, 교과서처럼 주요 사건을 일일이 나열해서 팩트의 압박이 엄청납니다.
분량도 많습니다. 제가 읽은 3편만 해도 600페이지가 넘으니 세 권을 합치면 2000페이지 정도가 될 겁니다. 물론 2000페이지에 미국사를 다 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학자가 아닌 일반인 입장에선 '선택과 집중'을 해 서술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역사적 사실을 몇 가지 메모하겠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쟁 도중 해임당했다
1950년 9월 12일 한국전쟁에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원수' 더글라스 맥아더. 그는 반공주의가 거셌던 미국에서 국민적 지지를 받았지만 전쟁 중이었던 1951년 4월 유엔군 총사령관에서 해임됐다.
맥아더는 한국전쟁이 실제로는 중국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했고 한반도 북쪽에 밀집해 있던 공산군에게 폭격을 가해 중국 자체를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새로운 세계대전이 일어날까 봐 두려워 중국과의 직접적인 마찰은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공산당 폭격을 주장하던 맥아더는 하원의 공화당 지도자인 조지프 마틴에게 보낸 공개 편지를 보내며 "어떠한 것도 승리를 대신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 공개 편지를 불복종으로 받아들였다.
지긋지긋한 PPL? TV쇼 초기엔 아예 광고주들이 극본을 썼다
텔레비전의 초기 시절에는 광고주들이 프로그램 콘텐츠를 직접 결정했다. 아예 GE 텔레비전 씨어터 크라이슬러 플레이하우스, 캐멀 뉴스 캐러밴 등과 같이 쇼 타이틀에 후원 기업 이름을 달렸다.
soap opera라는 연속극 장르의 어원도 이 프로그램의 광고주가 거의 대부분 여성을 겨냥한 가정용품을 만드는 회사들이었기 때문.
2차대전 후 보급된 텔레비전은 흑인들 사이에서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인식을 고양시켰다. 이제 흑인들은 주류 백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흑인이 백인 사회에서 실제로 차별받고 있는지 이전 세대보다 분명히 깨닫게 됐고, TV를 통해 다른 지역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 소식도 실시간으로 접하게 됐다. (스마트폰과 SNS의 보급이 우리의 인식에 주는 변화의 양상과 비슷)
김민석 국무총리의 '미국 문화원 점거'...이란 사건이 영감 줬나?
1979년 11월 이란 테헤란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에 무장 폭도가 침입했다. 당시 이란에서는 종교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가 집권을 하며 기존 팔래비 왕조의 '샤'는 퇴위하고 병 치료차 도미한 상황. 무장 폭도들은 샤의 이란 송환을 요구하며 외교관과 무관 등 미국인 53명을 인질로 붙잡았다. 이 사건은 1981년 1월 팔래비 왕조가 미국에 있는 재산을 반환하기로 하며 인질 석방으로 종료됐다.
1985년 5월 23일~26일 삼민투위 주도하에 서울지역 5개 대학교 학생 73명들이 연대해 서울 을지로에 위치해 있었던 서울미국문화원을 점거하고 "광주사태 책임지고 미국은 공개 사과하라"라고 요구했다.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김민석 국무총리도 여기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