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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바쁜 당신, '가짜 노동'을 하고 있진 않나요?

대니스 뇌르마르크·아네르스 포그 옌센의 '가짜 노동'

by 생각하는T


"2030년에는 평균 노동시간은 주 15시간이 될 것이며 그 시간조차 경제적이기보다는 인간적 필요를 반영하게 될 것이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1930년에 구상한 2030년 노동 환경입니다.


"노동자들은 일주일에 사흘(3일)만 일하고 나머지 나흘(4일)은 교외도시 '브로드에이커 시티'에서 정원을 돌보며 삶을 즐기고 자연과 교감할 것이다. 일하는 사흘도 오전 10시에 도시로 몰려왔다가 오후 4시면 집으로 쫙 빠져나갈 것이다."

1930년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구상한 뉴욕 근교 도시 '브로드에이커 시티'의 콘셉트입니다.


1930년대 지식인들이 예상한 100년 후의 미래는 지금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습니다. 물론 1930년대는 기술의 발달로 인한 생산력이 급증했기에 이런 낙관이 더 쉬웠을 겁니다.


하지만 '가짜 노동'의 저자인 덴마크의 데니스 뇌르마르크, 아네르스 포그 옌센은 여전히 주당 노동시간이 많은 것은 꼭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공공기관, 기업 등 (주로 거대 조직의) 조직 원리에 따라 '가짜 노동'이 발생해 왔고 이를 '주 15시간제'가 실현되지 않은 주요 요인으로 꼽습니다.

(덴마크는 주 37시간제가 정착된 '복지국가'기 때문에 주 52시간제 체제인 한국의 독자로서는 이질감이 들긴 합니다만, 여기서는 '가짜 노동'의 패악에 집중하겠습니다.)


저자들은 수많은 익명 인터뷰와 일부 실명 인터뷰 사례를 들며 현대 직장인들이 '가짜 노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가짜 노동은 말 그대로 일하는 척은 하지만 그 활동이 실제로 어떤 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것을 일컫죠.


15분 만에 끝낼 수 있는데도 1시간째 이어지는 회의, 아무도 읽지 않은 이사회 연간 보고서를 수개월동안 작성하는 직원, 정부가 강제한 체크리스트를 채우느라 1시간의 상담시간 동안 50분을 소요하는 의사(1시간 상담이라니, 이마저도 한국인으로서는 부럽긴 합니다), 수평적 의사결정체인 척을 하느라 모두가 동의할 때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조직 리더의 모습. 이 모두 가짜 노동의 단면입니다.


직원이 아예 그냥 일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상당수 인터뷰이들은 "나는 수년간 직장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회사는 그걸 알아채지도 못하고 월급만 잘 주더라"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월급 루팡'을 한다고 행복해하지 않습니다. 저자들은 '가짜 노동' 행위가 인간의 본질에 위배되기 때문에 가짜 노동을 하는 이들이 불행해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인간의 본질이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행위를 수행하도록 요구하기에 인간은 일한다"라고 말합니다.


저 역시 최근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런 '가짜 노동'을 했습니다. 회사의 큰 행사가 있어 이를 준비하는 TF에 파견을 간 것인데요. 기존 외근직 업무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행사준비 내근직 업무였습니다. 행사가 임박할수록 일이 몰리는 특성상 파견 근무 첫 주에는 하루에 실제 업무라고 할 만한 것을 한 시간은 1~2시간에 불과했습니다.


처음에는 "늘 성과를 내야 하도록 직원들을 쪼는 우리 회사에 이런 꿀보직이 있었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내근직의 한가함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보는 눈이 있기에 그 여유 시간에 독서를 하거나 영화를 보는 등 개인적으로 활용할 순 없고 그래도 일하는 척은 해야 했습니다.


이 책에 나온 사례를 대부분 겪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TF팀원들은 바쁜 척을 해야 했습니다. 출근하자마자 '회의'를 명목으로 40분 가까이 팀원들과 커피 타임을 했고 점심시간은 2시간에 가까웠습니다. 실제 회의시간을 포함해 일반 근무 때도 사람들은 똑같은 이슈를 거의 20~30번씩 얘기했습니다.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든 때워야 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평소에 알고 지내기 어려운 다른 부서 직원들과 좀 더 가까워졌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게 회사가 TF 발령을 낸 목적은 아니겠지만요.)


이번에 '가짜 노동'을 읽을 책으로 고른 것도 이 파견 기간에서였습니다. 사실 책에서 익힌 것보다 이 파견 기간 직접 체험한 경험이 더 '가짜 노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컸지만, 그 체험을 구조화하는 데는 책이 도움이 됐습니다.


이제 결론, 저자들은 이 '가짜 노동'과 결별하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사실 누구나 알지만 선뜻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사안들입니다.

'가짜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한 제안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하기

-정말 의미 있는 일을 하기

-회의는 무조건 짧게 하기

-불완전함을 감수하기(완전함을 기하기 위해 세~네 번씩 보고서를 확인하는 것은 시간낭비)

-노동의 가치를 시간으로 계량하지 말 것***


산업화시대의 유물인, 노동의 가치를 시간으로 계산하는 것은 '가짜 노동'의 근본 원인입니다. 일단 하루 8시간 근무시간을 채워야 하기에 그날 할 일을 다 했어도 집에 가지 못하고 쇼잉을 해야 하니까요.


저는 이번 파견 근무를 통해 제 본직이 외근직임에 다시 한번 감사함과 안도감을 느끼며,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수단'으로서의 노동에 집중하려 합니다.


노동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 책 '가짜 노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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