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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아름다움 소유하기...최고는 손과 말로 그리기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by 생각하는T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요인들을 의식하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것에 관해 쓰거나 그것을 그림으로써 예술을 통해서 아름다운 장소들을 묘사하는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평론가이자 화가인 존 러스킨이 꼽은 '어떤 장소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입니다. '여행의 기술'의 저자 알랭 드 보통은 존 러스킨을 인용해 우리가 여행지에서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존 러스킨은 화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데생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데생은 우리에게 '보는 법'을 가르친다고 본 것이죠. 가령 어떤 숲을 찾아 데생을 한다면 줄기가 뿌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안개는 어디에서 오는지, 이 나무는 왜 저 나무보다 색이 짙은 지 등의 문제들을 계속 제기하게 되고, 스케치를 하는 과정에서는 은연중에 이런 질문을 하고 또 답을 찾게 된다는 것이죠.


어떤 풍경이나 건물에 이끌리면서 얼렁뚱땅 "이것이 마음에 들어" 하고 말하고 넘어가는 데서 그치지 않고, 좀 더 정확하게 자신이 그것에 끌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짚고 자신이 마음에 드는 것에 대해 일반화를 해볼 수도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와 함께 "진정으로 귀중한 것은 생각하고 보는 것이지 속도가 아니다"라는 일침을 날립니다.


존 러스킨은 그래서 여행을 하면서 스케치뿐 아니라 '말로 그리기' 즉 글을 쓸 것을 제안합니다.


'여행의 기술'의 저자인 이 유럽 지식인(스위스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나 주로 영국에서 활동)은 여행에 대한 생각을 존 러스킨을 비롯해 조리스카를 위스망스, 샤를 보들레르, 에드워드 호퍼, 귀스타브 플로베르, 알렉산더 폰 훔볼트, 윌리엄 워즈워스, 에드먼드 버크, 빈센트 반 고흐, 자비에르 드 메스트르 등 유럽·미국의 작가·화가·철학자·지리학자 등의 철학을 빌려 풀어냅니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의 시(우리는 자주 따분했다네, 여기서와 마찬가지로-'항해' 중)를 인용하며 여행에 대한 우리의 기대감을 설명하거나,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을 제시하며 "중심 주제는 외로움이다. 호퍼의 인물들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라고 설명하는 등 여행과 문학·예술을 연계시키는 그의 능력은 감탄할 만합니다.


책을 저술한 2003년 당시의 모습도 구체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중남미 카리브해에 위치한 바베이도스 섬으로 간 여행을 기술하며 "막상 도착해 보니 수많은 것들이 자신들 역시 바베이도스라는 말의 울타리 안에 포함될 자격이 있다고 우기고 나서기 시작했다"라며 "노란색과 녹색이 섞인 '브리티시 석유' 로고로 장식된 커다란 석유 보관시설이나, 말끔한 갈색 양복을 입은 입국 심사원이 들어가 앉아 있는 작은 합판 초소가 그런 예였다"라고 회상하는 모습엔 모두가 공감을 할 겁니다.


온갖 철학·예술에 대한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는 이 책이 읽기 쉽지만은 않지만, 다가오는 여행을 기대하며 아름다움, 기대, 권태, 호기심 등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기 좋은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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