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이해한다 느낀 그 순간 놓여진 '몰이해'

소설집 '소설 보다 봄 2025'

by 생각하는T

저는 지난해 1월부터 1년 10개월째 주기적으로 책 읽기를 이어 오고 있는데요. 당초 '한 주에 한 권 읽기'에서 어느 순간 '격주에 한 권 읽기'로 느슨해졌습니다만, 그래도 아직까진 책 읽기를 나름의 습관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읽은 책들의 분류나 주제는 문학, 역사, 경제, 자기 계발, 심리, 반도체 등 여러 가지지만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사실 '사람'에 대해 좀 더 이해하기 위한 것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문학과 철학이 가장 직접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는 분야가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읽은 소설집 '소설보다 봄 2025'에도 이를 시도한 작품 3편이 실렸습니다. 이 소설집에는 △강보라 작가의 '바우어의 정원' △성해나 작가의 '스무드' △윤단 작가의 '남은 여름'이 담겼습니다.


성해나 작가의 '스무드'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얄팍한 이해'에 대해 그립니다. 이 소설은 한인 3세 미국인 '듀이'가 업무 차 생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경험을 그립니다.


유명 아티스트 '제프'의 매니저인 듀이는 미국 위스콘신의 '백인 동네'에서 자랐고, 무슨 이유에선지 그의 부모도 한국에 대한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아 철저히 미국인으로 성장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누가 '너는 중국계냐, 한국계냐'라고 물어보면 '나는 미국인이다'라고 답하고 본인은 김치도 먹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요.


제프의 작품은 서울 종로의 고급 아파트 단지 내 입주민 전용 갤러리에서 전시될 예정인 상황에서, 듀이는 해당 아파트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게 됩니다. 단지 내 레스토랑에서 퓨전 한정식이 제공되고 정원 관리도 매우 잘 돼 있으며 관리인도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그야말로 '매끄러운(smooth)' 공간입니다.


그런 스무드함은 듀이가 한낮에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종로 일대를 누비면서 깨집니다. 묵직한 십자가를 등에 진 이교도, 가부좌를 튼 불상, 박물관인 줄 알았던 퓨전 한식 디저트 카페 등 온갖 토템과 심벌로 가득한 거리를 빠져나오자 보이는 대형 전광판과 고층 건물, 다차선 도로. 한국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했던 듀이에게 한국(종로)은 하나의 갤러리와 같은 공간입니다.


관심이 없으면 편견 또한 없기 마련이라 듀이는 뭔지도 모르고 합류하게 된 '태극기 집회'에서 한국의 정(情)을 느낍니다. 그에게 이 '축제'가 열리는 ‘이승만 광장’은 온몸에 태극기를 휘감는 '애국심 많은 노인들'이 가득 차 있는 공간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방전된 휴대전화를 '노 프라블럼'이라며 가져가선 공짜로 급속 충전을 해주고, 떡이며 도시락이며 가는 곳마다 먹을 것을 챙겨주는 정 많고 순박한 사람들로 받아들여집니다. 특히 아버지 또래인 대구 출신 '미스터 김'에게선 자신이 아버지와의 단절에서 느끼지 못했던 뜨거운 부성애 비슷한 것도 느낍니다.


이 소설은 "서로를 이해한다고 느끼는 그 순간 둘 사이에 놓인 건 서로에 대한 몰이해"일 수 있는 상황을 그립니다. 성해나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한 인터뷰에서 "무수한 혐오와 차별의 문제,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의문을 소거하고 그저 '아무 문제없음(노 프라블럼)'으로 매끈하게 포장한 현대(혹은 기득권)의 이면을 저 나름대로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작가는 인간에 대한 이해하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해는 관계를 형성하고 진전시키기도 하지만, 때론 그 이해 때문에 인간은 무너지기도, 공포나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라면서도 "그럼에도 인간을 이해해 보려는 필사의 과정이 우리를 조금 더 인간답게 만들어 준다고는 생각한다"라고 말합니다.


현대문학에 문외한인 저조차 성해나 작가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요.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에서 지난해에서는 성 작가의 '혼모노'를, 올해에는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를 접했던 터였습니다. 성 작가는 상대적 소수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낯설게 보기를 계속 시도합니다. 혼모노에서는 신빨 떨어진 무당을, 길티 클럽에서는 인디영화 감독의 열성팬의 시선을 그린데 이어, '스무드'에서는 한국에 대한 정체성이 전혀 없는 한인 3세 미국인의 시선을 담습니다.


성 작가는 요즘 한국 문학의 아이돌 같은 느낌도 듭니다. 이번에 서점에 가보니 단편집 '혼모노'에는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라는 문구가 겉표지로 크게 장식돼 있었습니다. 박정민 배우의 추천사에서 인용된 문구라네요. 요즘 주변에서 성해나 작가 작품을 읽었다는 얘기도 꽤 들리고요. 문학이야 항상 논박의 여지가 있겠으나 대중성을 가진 스타 작가라는 존재가 분명 긍정적인 면도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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