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버스 텍사스대 심리학과 교수의 '욕망의 진화'
"오빠 오빠 오빠 돈 많아? /오빠 오빠 오빠 차 있어? / 오빠 오빠 오빠 집 어댜? /오빠 오빠 오빠 나 비싸" (존니 feat. 안소미, 단디. '라면먹고 갈래?' 中)
벌써 몇 해 전 유튜버 왕간다의 밈 영상으로 유행했던 이 유행가가 오랜만에 떠올랐습니다. 연애와 결혼을 둔 남녀 간의 심리적 차이를 진화심리학으로 분석한 '욕망의 진화'를 읽으면서입니다.
이 책은 정말 간단히 요약하자면 "짝짓기 시장에서 여성이 돈 많고 권력 있는 남성을 선호하고, 남성은 어리고 예쁜 여성을 선호하는 것은 자연선택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상대 성을 ‘김치녀’ ‘한남’으로 비하할 정도로 성별 갈등이 극심한데, 여자가 남자한테 밥을 얻어먹거나 선물을 당연하다는 듯 바라는 게 비단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사실 이 책에 제시된 모든 현상들 자체는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여성은 남성 배우자로 키 크고 잘 생기고(얼굴이 대칭형인 등), 경제적 자원과 권력이 많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어 보이며, 자기보다 나이가 많고(평균 3살 연상), 야망 있고 근면하며 친절하며 신뢰할 수 있고 안정감 있으며 똑똑하며 선물을 아낌없이 주는 등 자신(여성)에게 인색하지 않는 남성을 희망한다.
-남성은 여성 배우자로 어리고 건강하며 예쁜(엉덩이 치수 대 허리 비율이 0.7) 상대를 선호한다.
-여성은 단기적인 관계를 희망할 때도 장기적인 배우자를 찾는 기준과 마찬가지 기준을 적용하며 정서적인 관계를 추구한다. 반면 남성은 장기적인 관계로는 남성 관계가 적고 조신한 여성을 추가로 희망하지만, 단기적인 관계 상대로는 그다지 기준이 높지 않으며 육체적 관계에 끌린다.
이 책의 가치는 이런 현상이 우리 인류 선조들의 경험과 자연선택이 쌓아온 '자연'스러운 결과이며 그것이 생식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 차이에서 유래됐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했다는 점, 그리고 그럼에도 그것이 꼭 도덕적으로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에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수컷과 암컷을 구분 짓는 기준은 보유하고 있는 성 세포의 상대적 크기라고 합니다. 작은 성 세포(정자)를 보유한 개체는 수컷, 큰 성 세포(난자)를 보유한 개체가 암컷입니다. 그리고 200종 이상의 영장류를 포함해서 모두 4000여 종에 이르는 포유동물에서는 예외 없이 암컷이 체내 수정과 임신, 그리고 수유라는 짐을 짊어집니다.
여기에서부터 성 역할이 구분됩니다. 여성은 처음부터 투자량이 많은 성이기 때문에 남성이 보기에는 가치 있고 희귀한, 일종의 자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랜 인류사에서 여성들은 단 한 번의 성관계로 자칫 엄청난 투자를 해야만 하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었고, 배우자를 매우 까다롭게 고른 조상 여성들만 후손을 많이 남길 수 있었습니다.
단순하게 보면 남성은 최대한 많은 여성들을 임신시키는 게 후손을 많이 남길 수 있는 전략이었습니다. 실제 권력자들은 그렇게 해왔습니다. 중국 황제를 비롯해 많은 권력자들이 자신만을 위한 하렘을 운용해 왔고, 고대 로마 황제의 경우 다른 남성의 배우자와 동침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수많은 여성들과 짝짓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극소수의 알파메일이었을 뿐, 나머지 일반 남성들은 짝짓기 기회를 아예 박탈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류는 대체적으로 일부일처제를 도입해 비교적 안정적인 짝짓기를 유지했습니다. 인간 남성은 인류사적으로 90% 이상 짝을 찾았는데, 이는 동물 생태계 전반 평균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번식 시장'에서 높은 자원을 보유한 여성은 자신과 자기 자녀를 보호하고 자원을 제공할 남성을 선호해 왔고, 조상 남성들은 이런 조상 여성들의 선호에 맞게 발달해 왔다고 진화심리학을 통해 설명합니다. 너무 당연한 말들이긴 하나 저는 이 일련의 과정을 550쪽 분량으로 여러 연구 결과와 통계를 인용해 풀어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또 하나 이 책의 가치는 이런 '자연선택'과 '현대 인류의 선택권'을 구분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현대 인류에도 남아 있는 성적 역할 구분과 선호가 '자연'스러운 것이긴 하지만 그게 꼭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저자는 이 설명을 위해 자연주의적 오류와 반(反) 자연주의적 오류 두 개념을 듭니다. 자연주의적 오류는 "자연의 법칙이 이러하니 그게 옳다"며 과학적 기술과 도덕적 당위를 혼동하는 것입니다. 가령 인류사에서 일부 인간 남성들의 번식 전략으로 강간이 수없이 자행돼 왔는데, 그렇다고 지금 강간이나 성희롱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죠.
이와 함께 반자연주의적 오류도 경계합니다. 이는 현재 인간의 도덕으로 자연 현상을 재단하려는 시도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남녀의 성적 심리와 전략이 똑같다고 가정하는 것이 대표적이죠. 일부 페미니스트들을 주축으로 이런 해석이 제시돼 왔죠.
남성이 첫 데이트에서 밥을 사고 여성은 까다롭게 남성 배우자 후보를 고르는 등 짝짓기 시장에서의 남녀의 구분이 전 세계적인 공통 현상이며 인류사적 근거가 있음을 풀어헤친 '욕망의 진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