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평소 로맨스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편이 아닌데, 최근 두 개의 로맨스 작품을 연달아 봤습니다. 영화 '만약에 우리(2025년 개봉)'와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1995년 출판)'.
두 작품은 모두 누구나 겪었을 법한 평범한 연애를 섬세한 시각으로 포착하고 그려냅니다. 앞서 개봉한 '연애의 온도(2013년 개봉)' '가장 보통의 연애(2019년 개봉)' 등과 같은 궤에 있지요.
그 대척점에는 말 그대로 '영화 같은 러브 스토리'나 판타지 연애 소설이 있을 겁니다. 과거에는 로맨스 소설을 읽는다면 프랑스 출신 소설가 귀욤 뮈소의 '종이 여자'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같은 소설을 즐겼습니다. 소설 속의 여주인공이 현실로 왔다거나, 동독 출신 여성과의 수십 년에 걸친 가슴 아픈 사랑을 했다는 등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이야기로서의 매력이 넘칩니다.
이 서로 다른 로맨스 장르에서는 체험할 수 있는 감정이 전혀 다른 것 같습니다. '극적인 로맨스'에서는 현실에서는 겪을 수 없는 사랑을 대리체험하는 즐거움이 있다면, 평범한 연애 이야기에서는 독자나 관람객들이 과거 자신의 연애를 되돌아보며 겪는 감정적 경험이 포인트겠지요.
알랭 드 보통의 첫 소설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저자가 25살에 발표했다네요. 그리고 20대 유럽 남성의 연애도 우리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가벼운 미소를 짓게 만듭니다.
"전화기는 전화를 하지 않는 연인의 손에 들어가면 고문 도구가 된다"
" 자아는 아메바에 비유할 수 있다. 누가 나를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계속 농담을 할 가능성이 높다"
"상대방에게 무엇 때문에 나를 사랑하게 되었느냐고 묻지 않는 것은 예의에 속한다(왜 그리 여성들은 연인에게 '내가 왜 좋아?'라고 묻는 것인지!-필자)"
그리고 30년 전 나온 이 열정적인 청년의 거침없는 글은 지금 기준으로는 살짝 오글거리긴 합니다.
"짐을 챙겨서 세관을 통과했을 때 나는 이미 클로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녀의 말에서 통찰이나 유머를 찾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려나 그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그녀가 하는 모든 말에서 완벽함을 찾아내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이었다"
하나 특별한 점이 있다면 평범한 의견도 저자가 자신의 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그 특유의 현학적 표현으로 다뤄낸 다는 점입니다. 가령 그는 알베르 카뮈를 인용해 "우리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그 사람이 밖에서 보기에 매우 온전해 보이고 주관적으로 자신을 보면 몹시 분산되어 있고 혼란스럽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표현대로라면 그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방을 이상화하기 때문'인 것인데 말이죠.
저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사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임마누엘 칸트의 도덕론 등 온갖 철학을 꺼내 듭니다. 이 책을 20대 젊은이가 썼다고 생각하면 좀 너그러워지고 귀엽게도 느껴지기도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이 나이가 들고도 같은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을 고려하면 이는 젊은이의 열정이라기보다는 저자 고유의 성향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요즘 보면 유부남, 유부녀들이 미혼남녀보다 더 연애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자기에게는 과거형일 수밖에 없는 풋풋한 연애를 보며 대리만족하는 것이겠죠. 그러고 보면 연애감정은 인간의 강력한 본능인 것 같습니다.
평범한 우리의 연애를 섬세하고, 때로는 색다른 시각으로(보통 사람들은 연애에 임마누엘 칸트를 끌여들이지는 않죠) 풀어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발표된 지 30년이 넘도록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