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함'이 지켜지지 않으면, 사람들은 떠나간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5번째 회사이다. (C대학은 D그룹이 인수한 이후 거의 기업과 같이 운영되고 있고, 경력증명서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 엄연히 회사로 취급) 올해 30살인 걸 감안하면 적지 않게 회사를 옮겨다닌 셈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젠 진짜 못해먹겠다, 나가야지’라고 생각하고 6개월 이내에 다른 일할 곳을 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처음 직장인이 될 때 마음 먹었던대로 ‘대기업’은 한 번도 지원한 적 없다.
‘또질보(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가 ‘지못미’처럼 엄연한 한 단어로 통용되는 사회다. 다녔던 회사 5곳 중 ‘이 곳은 정말 다르다. 동기부여가 팍팍되!’라고 느꼈던 곳은 없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다. 그저 나 스스로가 ‘너는 이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 ‘이런 스킬과 역량을 키워야지’라고 나에게 동기부여 해왔고, 그게 나에겐 그런대로 잘 먹혔다.
졸업이든 사직이든 어쨌든 4번의 퇴사를 한 셈인데, 내가 ‘그만두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상사의 반응은 모두 달랐지만 내가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같았던 것 같다. 그건 바로 ‘공정성’이다. 내가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회사마다 다르지만, 곰곰히 그 원인을 생각해보면 모두 ‘공정함의 결여’였던 것 같다.
나에게 공정함은 무엇을 의미할까. 크게 3가지인 것 같다.
1. 적절한 보상을 지급하지 않는다.
2. 불합리한 것을 당연하게 요구한다.
3. 권리는 챙기고 싶고, 의무는 떠넘기는 무임승차자(free-rider) 유형의 윗사람이 있다.
누군가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내 스스로 일을 끝마치는 것이 좋았다. 외주를 맡기지 않고, 다른 팀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혹은 팀원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내가 혼자 처음부터 기획하고 끝까지 완성시키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 동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유투브 강좌를 듣고,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의 새로운 기능을 알아가고, 손그림으로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 모두 과정에서 순수한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 순간부터 괴로워졌다. 어느 회사든 처음엔 회사의 지출을 줄여주는 차원에서, 혹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시키지 않은 일도 하네’라는 차원에서 ‘기특하고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한다. 그 인식이 ‘당연히 이것도 할 줄 알겠지’ 또는 ‘OO씨에게 맡기면 돼’라는 당연함으로 바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점차적으로 내 전공 또는 능력 이상의 일들이 나에게 쏟아진다. 물론 그에 따른 ‘추가 보상’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마감을 어긴 적은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더라도 마감을 어기면 핀잔을 듣고, 심지어는 ‘변했다’고 한다. 난 변한 적이 없는데.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누군가의 인정이 없더라도 스스로 ‘공부하고 싶은 것’을 계속 공부할 것이고, 내가 ‘관심있는 것’을 탐구할 것이다. 당신이 인정해줬기 때문에 내가 하는 업무 외의 일들이 당연해진다면 그것은 당신의 우월감이고 오만이다.
스스로가 유능하고 잘났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닮고 싶었던 팀장님, 우러러보던 선배,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던 사수가 내가 떠났던 기업을 '먼저' 떠났던 이유도 '공정함의 결여'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다녔던 회사들 모두 50인 이하의 작은 기업이었기 때문에 이런 특징이 더 잘 보였던 것 같다. 회사(작은 기업일 경우 오너)는 만능 엔터테이너를 원함과 동시에 적절한 보상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무임승차자들의 일은 점점 유능한 사람에게 떠넘기고, 불합리한 것들까지 당연하게 요구하게 되는 것 같으니까. 새로 사람을 채용함에 따른 '비용'이 부담된다면, 평가체계를 명확히 갖추고(상/하/동료의 평가), 기존에 있는 인력들이라도 평가에 따른 상과 벌을 명확히 주면 되지 않을까.
언젠가 동료 H가 보내준 기사의 제목이 생각난다.
'왜 가장 유능한 젊은이들이 회사를 그만두는걸까?'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져야 하고, 경쟁의 과정은 공정해야 하며, 그 상태에서 결과의 차등적 분배가 정의롭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 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17. M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