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캥거루의 뛰다가 생각했어 01.
기다림이란 다정의 언어다. 오직 그러하리라 믿는 대상만 기다릴 수 있고, 대개 믿음은 다정에서 비롯된다. 아이를 낳고 돌보는 과정에서 참 많이도 기다렸다. 아이의 옹알거리는 단어와 단어 사이, 부르르 끓어오른 어리디 어린 화가 가실 때까지의 시간, 잔소리가 속사포 랩처럼 터져 나오기 전에 아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모습 같은 것들을 기다리며 그만큼 사랑도 차곡차곡 쌓였다.
참 어려웠다. 아이를 기다려주려면 먼저 나를 기다려주어야 했고, 나를 기다려주려면 먼저 나에게 다정해야 했다. 타인에게는 없는 것도 끌어와 건네었던 다정이 막상 내게 주려니 사막 한가운데에서 만난 신기루처럼 허무하게 흩어졌다. 그제야 알았다. 살아오는 동안 정작 나 자신을 기다려 준 적이 없었다.
이상은 하늘에 걸려 있는데 현실은 집구석 어딘가에 콕 박혀 있어서, 원치 않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칠 때면 힐난하기 바빴다. 더 노력했어야지, 더 잘했어야지, 더 참았어야지. 아이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생각지도 못하게 구석 귀퉁이에 잔뜩 웅크리고 앉은 나를 만났다. 웅크린 나를 보며 처음에는 이 사람, 저 사람 탓할 사람을 찾기에 바빴다. 그런데 아이와 대화를 나누다 결국 눈치를 채고야 말았다. “너는 항상 너의 편이 되어 줘야 해.” 어느 날 아이에게 건넨 말을 끝맺기도 전에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나를 가장 아프게 비난하는 존재였으니까.
이제 나를 기다려주기로 했다. 처음에는 스스로를 위해 나를 기다리는 일이 낯설기만 했다. 그래서 아이를 위해 나를 기다렸다. 그렇게라도 나를 기다리고 싶었다. 스스로를 기다려줄 수 없는 엄마가 아이를 기다려준다는 것은 어쩐지 진정성 없는 연극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는 늘 진짜를 주고 싶다. 내 마음을 벼리고 벼려 진심으로 믿고 사랑해서 할 수 있는 그런 기다림을 전하고 싶다. 비록 나를 위해 첫걸음을 떼지는 못했지만 그럼 뭐 어때. 나에게는 작은 기다림의 불씨가 간절히 필요했다.
부족한 점을 나열하자면 지구 한 바퀴를 돌고도 남을 것 같은 나를 한 뼘 한 뼘 기다리다 보니 부족해도 늘 최선을 다했던 내가 보였고, 넘어졌다가도 끝내 다시 일어났던 내가 보였다. 애썼다. 그만하면 잘했다. 될 때까지 해봐. 아이에게 늘 하던 말을 내게 하는 것은 비록 자기 합리화로 치부되기도 하고 오글거림을 동반하기는 일이었지만 무척이나 따뜻했다. 부산스럽고 늘 쫓기던 마음에 한 줄기 바람이 불고, 작은 여유가 깃드는 느낌이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살아가며 가장 친해져야 하는 대상은 아무래도 나인 것 같다. 너무 속속들이 알아 얕은꾀가 통하지도 않고, 어떨 땐 남보다도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남은 인생은 나와 손잡고 같은 곳을 보며 걷고 싶다. 궤도를 벗어났을 땐 궤도에 다시 오르라고 말하지 않고 나만의 궤도를 새로 만들라고 말해 줘야지. 하고 싶은 일 앞에서조차 한없이 게으를 땐 차마 하지 않을 수 없는 당근을 눈앞에 흔들어 줘야지. 나만의 궤도를 만들고 다시 일어날 때까지 믿고 기다려 줘야지. 이토록 다정하게 기다려주는데 내가 날 좋아하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지.
이제는 오롯이 내가 나로 살아가는 시간. 때로는 여전히 아프고 힘들겠지만, 물을 흘렸을 땐 닦으면 되고 얼룩진 옷은 빨면 그만이듯 잠깐 앉아서 쉬어가더라도 내가 나라는 것을 긍정할 수만 있다면 그저 내 삶이어서 좋은 그런 뿌듯하고 풍성한 마음이 내게도 찾아오지 않을까. 그러니까 그저 기다려야지. 때로는 지루해도 다정하게.
▶ <포포포매거진>이 발행하는 뉴스레터 'pausing by popopo(포, 포포포)'에 연재한 글을 조금 더 다듬고 직접 그린 서툰 그림을 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