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캥거루의 뛰다가 생각했어 05.
아이는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존재다. 일상에서 실제의 나를 아이에게 숨기기보다는 가능한 있는 그대로 내어 보이려 애써왔다. 잘못을 하면 사과하고, 부족하면 부족했다고 말한다. 기쁘면 웃고, 화나면 화내고, 슬프면 울고, 즐거울 땐 함께 막춤을 춘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내 마음을 읽는 데 도가 텄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상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사랑스럽고 소중한 작은 존재를 마주하자 나는 어디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이상적인 엄마가 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부드러운 음성, 느긋한 말투, 인자한 미소와 같은 것들을 구현하며 절대 화내지 않는, 언제나 밝은 엄마가 되어주리라 다짐을 했더랬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라는 이름 아래 나는 참으로 비장했다.
아이가 4살이 되고 처음으로 화를 냈다. 아이의 아몬드 같은 눈이 동그래졌다.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아이의 얼굴이 아직도 사진처럼 선명하다. 어쩌면 그날 나는 아이보다 나 자신을 더 상처 입혔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엄마가 되는 건 역시 그른 것 같았다. 아무래도 다시 태어나야겠다고, 그 방법밖에는 없다고 자책하기 시작했다.
주위에서는 내게 좋은 엄마라고 칭찬했지만 내 눈에 나는 언제나 한참 모자란 엄마였다. 뿌리가 썩은 채 자란 나무처럼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불안한 엄마. 매일 스스로의 엄마 점수를 매기며 채점하듯 살았다. 점수가 좋은 날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가도 점수가 나쁜 날이면 그대로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언제나 크고 깊었다. 아무도 내게 좋은 엄마가 되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가 만든 이상향과 불안에 갇혀 늘상 허우적대기 일쑤였다.
마음 깊숙이 불안을 간직한 내가 유일하게 일말의 불안 없이 행한 것은 아이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매일매일 사랑한다는 말을 단 한 번도 빼먹지 않았다. 사랑해, 지금 모습 그대로 네가 참 좋아, 태어나줘서 고마워. 하루에도 몇 번씩 껴안고 뽀뽀하며 뺨을 맞대었다. 아이가 정말 사랑스럽기도 했지만 평소 말이 가진 힘을 믿어왔기에, 사랑의 언어가 나의 모자람을 조금이라도 메워주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러다 아이가 7살이 되던 어느 날 아이에게서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은 말을 들었다.
나는 커서 엄마처럼은 안 될 거야.
엄마는 내가 걱정이 되면 화를 내.
그런데 내가 엄마랑 닮은 어른이 되면
나도 내 자식이 걱정될 때 화를 낼 거잖아.
나는 그러기 싫어.
아이는 차분한 표정으로 조목조목 따져가며 내 마음을 잘근잘근 죄다 씹어놓았다. 아, 결국 나도 나의 부모님처럼 안 좋은 부모가 되고야 마는 것일까. 참담하고 겁이 났다. 남들이 아무리 좋은 엄마라고 말하면 뭐 해, 내 자식이 나를 닮고 싶지 않다는데.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원점으로 돌아왔다. 고민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을까. 나라는 엄마의 좋은 점은 무엇일까. 문득 아이가 원하는 엄마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다 그만 울컥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아이는 그저 나라는 엄마를 원한다. 모자란 이 엄마는 어디에선가 훌륭한 엄마를 빌려서라도 아이에게 선사하고 싶다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이나 하는데, 아이는 그저 나라서 나를 사랑해 준다. 내가 아이에게 그러하듯이.
나는 가족에 관한 한 보고 배운 좋은 자원이 적다. 하지만 그날 알았다. 아이에 대한 사랑이 내가 가진 가장 크고 핵심적인 자원이며,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좋은 엄마라는 것을. 그리고 매사에 성실한 나의 최선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며, 우리가 어떤 순간에도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 깨달았다.
이제 어느덧 아이가 사춘기 초입에 접어들었다. 하루는 등교 준비를 하다 문득 생각난 듯 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랑 내가 똑같아서 참 좋아.
순간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눈물이 많은 나는 기쁘거나 슬플 때, 심지어는 화가 나도 눈물이 난다. 웃어야지, 속으로 결심하듯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엄마도 우리가 닮아서 참 좋아.
아이에게 우리가 똑같아서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물었다.
우리는 정말 많이 닮은 것 같아.
우린 둘 다 화가 나도 금방 풀려.
뒤끝이 없어.
똑같으니까 공감도 잘 되고 좋아.
아이가 나와 닮은 것을 기뻐한다! 그것은 내게 남아있던 묵은 먼지 같은 마지막 불안을 떨쳐내는 말이었다. 세상에 어떤 말을 들은들 이보다 기쁠까. 내게는 아이의 그 한 마디가 평생 들어본 그 어떤 말보다 기뻤다. 그날에서야 나는 비로소 온전히 채워져 내가 되었다. 아이는 나와 자신이 닮아서 좋다고 말했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그 말은 꼭 내가 나를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말처럼 여겨져 그렇게 안심이 될 수가 없었다.
언제나 불안이 마치 유전자에 새겨져 있기라도 한 듯 매사에 종종거리며 불안하게 살았다. 아이를 대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나의 불안은 너무 오래되어 잘 떨어지지 않는 스티커 같은, 그냥 그런 것이었다. 끈적임은 남을지 몰라도 마음먹고 떼어버리면 그만인 대수롭지 않은 것 말이다. 이제 나의 시간은 조금 더 편안하고, 아주 약간 여유롭다. 모두 아이 덕분이다.
▶ <포포포매거진>이 발행하는 뉴스레터 'pausing by popopo(포, 포포포)'에 게재된 글을 한 번 더 퇴고하고 서툰 그림을 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