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집이 좋은 집일까?

[연재] 캥거루의 뛰다가 생각했어 06.

by 캥거루

4년이 넘도록 이사를 고민하고 있다. 어느 정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게서 이사 타령 한 번쯤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묵고 묵은 고민이다. 그간 들른 부동산, 둘러본 집만 해도 몇 군데인지. 그런데 아무리 고민하고 찾아보아도 나의 이사 고민은 여전히 해소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나는 까다롭다. 심지어 경제적인 여건도 그리 넉넉하다고 말할 수 없으니, 까다로움과 현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선택지를 찾아 방황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그렇게 단순한 방황만으로 치부할 수도 없다는 데 있다.


남편, 특히 아이가 이사를 원하지 않는다. 아이는 우리집보다 더 크고 더 좋은 집을 보아도 언제나 우리집이 제일이라 말한다. 아이는 진심이다. 우리집은 한적하고, 뷰가 좋고, 아늑하고, 큰 하자도 없고, 이웃도 좋아. 외출하고 돌아오면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침대로 뛰어들어가거나, 소파를 끌어안듯 엎드린 채 누워 아이는 꽤나 자주 지금 사는 이 집을 찬양한다.


자산인지 부채인지 헷갈리는 그 어느 선상에 놓인, 집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아이의 의견에 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를 두고 많은 지인들이 진심 어린 충고를 했다. 이사 문제는 아이의 의견을 따라선 안 된다고 말이다. 나도 안다. 이사를 갈지 말지, 이 집에 살지 저 집에 살지 정하는 일은 외식을 할지 집밥을 먹을지, 파스타를 먹을지 국밥을 먹을지 따위의 가벼운 이슈들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래도 아이의 의견을 무시할 수가 없다.


자신의 거취를 스스로 정할 수 없는 인생은 무력하다. 나는 어린아이라고 해서 마냥 단순하고, 금세 적응하며, 쉽게 잊고 쉽게 하하 호호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어린 시절 내내 어른들에 의해 이곳저곳으로 내둘러지며 살았다. 누군들 내가 힘들어지길 바라 그런 결정을 내렸겠는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서울과 대한민국의 남쪽 끝단을 여러 번 옮겨 가며 사는 동안 그 누구도 내게 단 한 번도 의견을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사를 가고 싶은 마음의 구 할 즈음은 나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인데, 아이의 학교나 친구, 학원, 아이의 눈을 즐겁게 하는 거실 창 밖 풍경은 곧 아이의 삶 그 자체다. 이사는, 평생이라고 해봐야 세상에 난지 이제 겨우 십여 년을 지난 아이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이기에 나는 아주 느리고 답답하게 오늘도 고민을 이어간다. 아이가 인정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사. 나는 그런 이사를 원한다. 내가 찾아야 하는 집은 아이가 이사를 원할 때 나의 욕망을 어느 정도 충족시키며 아이의 마음에도 드는 그런 집이다. 한 마디로 말해 세상 물정 모른다고 지나가던 개도 콧방귀를 뀔 것 같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또다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사를 가고 싶은 이유 서너 가지와 나의 이 들끓는 욕망보다, 아이가 그 어떤 집보다도 우리집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내게는 더 귀하고 중요하다. 사실 나는 아이가 우리집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마다 짜릿하고 뿌듯하다. 아이가 정말 자랑스러울 정도다. 이번에는 반드시 이사를 가야지! 단단히 결심을 했다가도 비 온 뒤 다 떨어져 버린 꽃잎처럼 순식간에 마음이 꺾여버리는 이유는 아이의 그 마음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네이버 부동산과 호갱노노, 지역 카페를 들락날락하며 생각한다. 과연 나는 이사를 갈 수 있을까? 이사를 안 가는 것인지 못 가는 것인지 이제는 나조차 헷갈릴 지경이지만 이것도 4년이 넘어가니 이른바 정신 승리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사를 못 가면 어때, 우리 세 사람이 지금처럼 즐겁게 사는 곳이 제일 좋은 집이지. 그래, 그런 거지. 아마 그럴 거야.



IMG_0133.JPEG


▶ <포포포매거진>이 발행하는 뉴스레터 'pausing by popopo(포, 포포포)'에 게재된 글을 한 번 더 퇴고하고 서툰 그림을 더했습니다.

토요일 연재
이전 05화엄마랑 내가 똑같아서 참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