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캥거루의 뛰다가 생각했어 08.
최근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다. 자려고 불을 다 끄고 침대에 눕고 나면 꼭 가느다란 전구색 빛줄기가 화장실에서 안방 천장으로 길게 주욱 뻗어 있는 것이다. 나는 분명 화장실 불을 끈 것 같은데 왜 매번 화장실 불은 켜져 있는 것이며, 오른손으로 화장실 불을 딸깍, 끈 이 기억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이란 말인가.
나무늘보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움직이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지라, 이상하게도 매일 반복되는 화장실 불 미스터리에도 나는 지치지 않고 매번 저 불을 끌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겨우겨우 억지로 몸을 일으켜 불을 끄고 돌아오곤 한다. 오늘 밤도 그랬다.
이상한 일은 그뿐만이 아니다.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물기를 다 닦고 나온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편이 또 웃는다. 왜 등이며, 다리에 물이 그대로 묻어 있느냐고 Ctrl+C, Ctrl+V를 한 것처럼 어제도, 그제도, 그그저께도 했던 말을 고스란히 오늘도 한다. 그럼 나도 질세라 어제도, 그제도, 그그저께도 했던 말을 고대로 남편에게 전하곤 한다. 나는 다 닦았노라고.
이상하다. 나는 언제나 온몸의 물을 꼼꼼히 다 닦고 나오는데 왜 항상 하나도 안 닦은 것처럼 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까? 처음에는 머리가 길어 머리에서 물이 떨어진 줄 알았는데, 몸의 물기를 닦고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 틀어올린 뒤이니, 어느 순간 몇 방울 물방울이 튀었을지언정 그렇게 등허리며 다리에 물이 많이 맺혀있을리 없다.
잔잔한 호수 같은 남편의 일상에 갑자기 물수제비 뜨고 돌 던지는 드라마틱함을 선사하는 나는 언제나 남편의 연구 대상이 되곤 한다. 아차, 싶은 순간 고개를 들면 항상 남편이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예를 들면 바지를 벗다 말고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은 순간과 같은 때가 그러하다.
옷을 갈아입다 말고 무언가 생각이 떠오르면 나는 즉시 그것을 하는 편이다. 어느 날은 깜빡 잊고 있던 생필품을 구입하기도 하고, 때로는 카톡으로 지인에게 연락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옷을 입은 것도 아니고 벗은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생각난 일을 해치운다는 점에 있다. 바지를 무릎쯤에 걸친다든지, 상의를 워머처럼 목에 걸친 상태로 무언가에 열심히 몰두한 나를 보며 남편은 늘 질리지도 않고 흥미로워 한다.
남편이 이렇게 나를 흥미로워하는 이유는 나의 이 모든 행동들이 어디서 많이 보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소프트웨어의 90% 이상은 나를 닮은 것 같다는 우리 아이의 모습이다.
아이가 다녀온 방은 대개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아이는 매번 열심히 불을 끈다고 껐지만 야속하게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아이가 샤워를 하고 나오면 온몸에 물기가 가득하다. 6살 때부터 혼자 샤워를 해온 덕에 물기 닦기 내공은 이제 충분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매번 등에서 물이 또르르 흐른다. 샤워를 마친 아이는 잠옷을 입다 말고 책을 본다. 바지를 엉덩이에 걸친 채 보기도 하고, 윗도리가 겨드랑이 즈음에서 미처 다 내려가지도 않은 채 책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남편은 유전자의 신비를 처음으로 발견한 과학자라도 된 것처럼 두 눈을 빛내며 빙글빙글 웃는다.
말수가 매우 적었던 지난날을 지나, 아이를 돌보며 마침내 잔소리로 랩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나지만 나와 똑 닮은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생 때 읽었던 우화에 나오는 엄마 꽃게 아기 꽃게 이야기가 떠올라서이기도 하지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나를 그리 많이 닮았는데도 여전히 사랑스럽다는 사실에 미처 말로 다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감정이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문득 자신은 옆으로 걸으면서 아기 꽃게에게는 “아가야, 앞으로 걸어야지.” 말했을 엄마 꽃게가 사실은 참 속상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으로 걷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 혹은 정말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기에 앞서 그것은 자신과 아이의 본질을 부정하는 말이 아닌가.
이유를 모르게 끄지 못한 불은 끄면 되고, 미처 닦지 못한 물기는 닦으면 되고, 입다 만 옷은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하고 입으면 된다. 그것은 미스터리일 수는 있으나 문제는 아니고, 흥미로운 이슈일 수는 있지만 잘못은 아니다. 그저 나와 아이의 일면일 뿐이다. 아주 오랫동안 나만의 평균선을 기준으로 넘침과 모자람을 측량하며 스스로를 깎거나 애써 무언가를 보태왔던 마음에 이제 작별을 고한다. 이제 아이와 함께 타고 나고 생긴대로 옆으로 걸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도 우리는 충분히 사랑스러우니까 말이다.
▶ <포포포매거진>이 발행하는 뉴스레터 'pausing by popopo(포, 포포포)'에 연재한 글을 조금 더 다듬고 직접 그린 서툰 그림을 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