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의 돌

[연재] 캥거루의 뛰다가 생각했어 09.

by 캥거루

그 무엇보다 말의 힘을 믿는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순간조차도 내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말의 힘만큼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부여잡듯 믿어왔다. 엄마로서 아이를 대할 때 가장 조심하고 신경 쓰는 부분도 다름 아닌 말이다. 말에는 언제나 강한 힘이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아 늘 더 노력하게 되는 말이 있다. 바로 걱정의 말이다. 아이를 위하는 마음에서 한 걱정의 말이 되려 아이를 궁지로 몰아넣지는 않는지, 아이가 스스로를 탓하게 만들지는 않는지 항상 살피고 경계한다.


쉽지 않다. 여전히 나는 자주 실수하고, 그때마다 가능한 빠르게 사태를 수습하는 것으로 가까스로 실수를 메우는 ‘땜빵식 육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이 던진 돌에 아이가 맞게 될지언정 아이의 심장에 돌을 던지는 엄마만은 되고 싶지 않기에, 아이의 발치에 자잘한 돌무더기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걱정의 돌로 홈런 치는 일만은 피하려고 노력 중이다.


넌 더 독해져야 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던 20대 시절, 통신사로부터 휴대폰비 납입 독촉 전화를 받고 펑펑 울며 전화를 건 나에게 남자친구가 말했다. 아팠다. 우는 대신 과외나 아르바이트 자리를 더 찾고, 더 열심히 공부해 장학금을 받고, 더 잠을 줄이면 해결 못 할 문제도 아닌데 동문회관 구석에서 하늘이 무너진 듯 울고 있는 스스로가 지지리도 못나 보였다.


맞는 말이었다. 독해져야지. 독해져야 하는데, 독해지고 싶은데, 나는 또다시 산산이 부서진 유리조각처럼 형체를 알 수 없이 흩어져 버린 마음을 손 놓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독해져야 한다는 말을 건넨 남자친구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를 위해 건넨 그 한 마디에 나는 오히려 또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기댈 곳이 없었다. 그저 ‘너 그런 전화받아서 힘들었겠다.’ 그 한 마디가 듣고 싶어 걸었던 전화였다. 그런데 더 독해져야 한다니. 끝없이 주어지는 ‘독해지기’ 레벨 업 퀘스트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어디로든 그만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나는 여전히 나약했고, 그런 나를 이해하기엔 남자친구의 생활은 너무나 안전하고 평화로웠다.


나는 끝끝내 독해지지 못했다. 적을 맞이했을 때 주변에 놓인 조개껍데기며, 산호 조각, 돌멩이 등으로 몸을 감싸 스스로를 지켜낸 ‘나의 문어 선생님’처럼, 누가 던진 것인지도 모르는 돌을 맞을 때마다 그저 주변의 그 무엇이든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모두 주워, 부서진 나를 이어붙이고 스스로를 지켰다.


괜찮아.

그런데 남편은 언제나 나에게 괜찮다고 말한다. 잘 할 필요 없다고, 그 정도면 되었다고. 회사일로 고민할 때도 못하면 잘리기밖에 더하냐 괜찮다 말하고, 매일 걱정거리를 따발총 쏘듯 쏘아대는 내 앞에 아주 크고 묵직한 방패를 세워둔 듯 언제나 평화롭게 괜찮다는 말만 반복한다.


아주 오랜 친구이기도 한 남편은, 표현이 조금 우습지만 한 번도 나를 제대로 걱정한 적이 없다. 속으로는 걱정을 할는지도 모르나 겉으로는 걱정하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남편의 천성이자 나에 대한 진한 배려임이 틀림없다. 매번 나의 걱정을 대수롭지 않게 튕겨내 버리는 남편의 태도에 나는 성질이 나다가도, 세찬 소나기에 쉴 새 없이 흔들리던 수면이 일시에 고요해지듯 이내 평화로운 안정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걱정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건가 봐.


남편을 보며 생각했다. 상대방을 사랑할수록 입 밖으로 내야 하는 것은 걱정의 말이 아닌 응원과 지지의 말인지도 모르겠다. 말의 힘은 강하디 강해서 걱정에 쓰게 되면 오히려 걱정거리를 더욱 짙어지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아이를 향한 잔소리라 쓰고 걱정이라 읽어야 할 나의 잔소리 랩을 되돌아보며 그것은 말이 아닌 돌이라고, 돌을 던지면 맞은 사람이 아픈 법이라고, 자꾸만 입에 모터를 다는 나를 달래며 남편의 괜찮다는 말을 곱씹고 또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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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포포매거진>이 발행하는 뉴스레터 'pausing by popopo(포, 포포포)'에 연재한 글을 조금 더 다듬고 직접 그린 서툰 그림을 더했습니다.


▶ 목요일에 업로드해야 하는데, 하루 늦게 올리고 말았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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