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캥거루의 뛰다가 생각했어 10.
수확 후 케일 줄기 밑동만 뒤숭숭하게 남은 스마트팜 키트에 생존자가 있었다. 진작에 다 수확하고 난 뒤라 남은 잎이 없어 물도 주지 않고 있던 차였다. 언제였던가, 아이가 살아남은 케일 이파리가 있다고 말했던 것이 뒤늦게 기억이 났다.
살아남은 아이는 키워야 하지 않을까?
아이가 제안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모양새의 작고 여린 잎사귀가 아이의 마음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황폐해진 키트를 분해하고 여린 생명이 깃든 배지를 조심스레 떼어내어, 더 이상 쓰지 않는 유리그릇에 담아 신선한 물을 채워 넣었다. 작은 이파리가 나지막이 한숨 돌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내가 한 번씩 물을 주고 있었어.
영양제는커녕 물 한 방울 없이 어떻게 몇 주 동안이나 새잎을 내고 살아남았을까 궁금해하는 내게 아이가 담담하게 말했다. 아침이면 소파 왼편에 무릎으로 서서 스마트팜 기기를 빼꼼히 들여다보는 모습은 종종 보았는데, 계속 물을 주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어쩐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아이는 비가 오고 난 다음날 등교를 할라치면 특히나 발걸음이 더디디 더뎠다. 보도블록 위로 마실 나와 사람들 발에 밟혀 죽기 딱 좋은 달팽이며 지렁이를 하나하나 화단으로 옮겨주고 나서야 겨우 걸음을 옮겼기 때문이다. 질주하는 급행열차 같은 성정의 아이도 잠시 쉬어가게 하는 것, 그것은 대개 작고 여리고 부드러운 것들이었다.
누가 널 발로 차면 좋겠어?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화단의 나무를 발로 차는 어린이가 있으면 곁에 다가가 꼭 말려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 누군가에겐 성가시고 또 누군가에겐 지나치게 예민한 대응일지도 모르나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그러한 태도조차도 내 눈에는 참 감사하고 소중한 아이의 일면이다.
보도블록 주변엔 스러져가는 생명이 많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을 보낸 할머니 댁 바로 앞, 보도블록 가장자리 아래에서 쓰러져있는 꿀벌을 만난 적이 있다. 모종삽만 덜렁덜렁 들고 흙놀이를 나왔다가 붕붕거리는 소리에
놀라 내려다보니 날갯소리는 요란한데 기지도 날지도 못한 체 꼼짝없이 죽어가는 처지로 보이는 꿀벌이 한
마리 있었다.
조심스레 꿀벌을 모종삽에 태웠다. 짚 앞 언덕 나이 많은 벚나무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때는 그야말로 바야흐로 봄이었다. 꿀벌에게 밥을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짝 핀 벚꽃 가까이에 모종삽을 가져가자 신기하게도 꿀벌이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 꽃의 꿀을 빨아먹기 시작했다.
다행이기도 하지. 두 팔 벌려 한아름 안아도 양손이 맞닿지 않을 정도로 굵다란 그 벚나무는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았던 내 키로도 팔만 뻗으면 닿을 수 있을 정도의 높이에 꽃이 수북이 피어 있는 탐스러운 가지를 주욱 뻗어 주었다.
꿀을 먹다 꿀벌이 순간 힘을 잃고 데굴 떨어지려 하면 다시 모종삽으로 받아 다른 꽃에 데려다주기를 두어 번. 몸집이 작아서일까, 이내 기운을 차린 꿀벌은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어느 순간 갑자기 훌쩍 날아가 버렸다. 귓가에 짧게 맴 돈 꿀벌의 날갯짓 소리가 제법 힘찼다. 꿀벌이 살아서 기뻤다.
내가 아닌 다른 생명체와 서로의 경계선을 넘어 만나게 되는 순간이면 언제나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어린 시절의 나와 아이도 그랬을까. 크고 강한 존재보다 작고 여린 존재를 정면으로 마주할 때,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사는 것이라는 말장난 같은 문장이 떠오른다.
살아가며 나는 작은 일에도 수시로 넘어지고 그때마다 자주 나쁜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내 마음 하나 못 이겨 목구멍이 찢어지도록 아프게 울음을 삼키다가도 나는 금세 헤실거리며 밥을 먹고 오늘과 내일의 일상을 이야기한다. 굵고 탄탄한 줄기를 뻗어나가는 인생은 아닐지 모르지만, 한 번도 심하게 아픈 적 없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진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데에는 누구의 허락도 필요하지 않지만 일면 작고 대단하지 않은 생명이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순간마다 어쩐지 나는 나의 삶을 이어가는 데 대한 허락을 받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나는 아마도 오랜 기간 나의 허락 하나를 받지 못해 내내 온 세상에 허락을 구하고 있었나 보다.
스마트팜의 조명을 켜고 물을 보충한다. 이제부터 제대로 키운다 해도 먹지는 못할 것 같은 이 비실비실한 생존 케일을 보며 생각한다.
못 먹으면 어때, 살아있는데.
▶ <포포포매거진>이 발행하는 뉴스레터 'pausing by popopo(포, 포포포)에 게재한 글을 조금 퇴고하고 아주 서툰 그림을 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