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무엇일까?

[연재] 캥거루의 뛰다가 생각했어 04.

by 캥거루

스물한 살이 되던 해의 어느 날이었다. 복도로 난 창으로 오전의 햇살이 은은하게 작은방을 비추어 주고 있었다.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그날, 방문을 여니 온 집안이 텅 비어있었다. 마치 폐허 위에 버려진 듯 나와 두 살 어린 동생은 그렇게 우리를 제외한 가족의 이사를 목격했다.


방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 걸음만 뒤로 가면 여전히 일상이 살아 있는데, 한걸음 앞인 그곳은 이미 내가 모르는 공간이었다. 아빠의 사업이 망했고, 그 집에서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것과 동생과 나는 부모님과 따로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누가 버리고 간 것 같은 텅 빈 집에 우리 둘만 남겨지는 것과 같은 말이라는 것은 미처 알지 못했다. 스물한 살이었지만 아직 어른이라기엔 너무도 미숙한 나이였다.


어두운 밤 갑자기 들이닥친 새로운 집주인의 화를 받아내며 나는 가진 것 없이 맨몸으로 세상에 던져져 버렸음을 깨달았다. 부모님은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것을 과연 알았을까. 우리집은 이미 경매에 넘어가 아빠에서 그 사람으로 집주인이 바뀌어 버렸고, 부모님은 막냇동생만 챙겨 도망치듯 이사를 간 것이며 나와 이제 갓 대학에 합격한 동생은 성인이라는 이유로 부모님이 챙기지 않아도 되는 대상이 되었음을 뒤늦게 수수께끼를 풀듯 알았다.


역시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은 진짜인가 봐. 종종 생각했다. 고등학생 시절 종종 대학생이 되면 집을 나오겠다고 말해왔는데 이렇게 정말로 독립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만나자는 대학 동기들의 전화가 오면 차비도 식비도 없어 만날 수 없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한 채 에둘러 핑계를 대 거절을 했다. 막막함에 눈물이 흐르다가도 내 손으로 내 뺨을 때리며 정신을 가다듬어야 했던 나날이었다.


당시 나의 수입원은 오직 과외 수업 하나. 학비는 학자금 대출을 받는다 치더라도 새로 집을 구하고 나면 월세를 내야 했고, 공과금, 식비, 교재비, 교통비, 통신비, 최소한의 의류비 등이 필요했다. 이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생계 고민에 눈앞이 캄캄했다. 나보다 어린 동생이 곁에 있다는 사실은 한편으로 다행스러우면서도 사실은 너무 무거워서 답을 어서 찾지 않으면 이대로 죽어버릴 것만 같아 두려웠다.


“너, 된장찌개 끓이는 법은 아니?”


두 딸이 밥은 챙겨 먹고 사는지 부모님 중 아무도 묻지 않았고, 내 소식을 들은 친구의 엄마가 된장찌개 끓이는 법을 알려주시며 두부, 애호박, 감자, 양파가 얼마인지와 내게 직접 밥을 지어먹어야 식비를 아낄 수 있다며 마치 세상의 가장 귀한 비밀을 알려주시듯 가르쳐 주셨다. 부모님이 물어야 할 것 같은 질문과 부모님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 같은 것들을 모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으로부터 받으며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드디어 내게도 나만의 가족이 생겼다. 분명 나도 가족이 있었는데 그제야 비로소 진짜 내 가족의 일원이 된 기분이었다. 나를 버리지 않고 나도 버리지 않을 것이 확실한 나의 가족.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나눌 수 있어 힘이 되는 관계. 나에게 가족은 살아가는 이유이자 나를 살게 하는 힘이며 철없는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유일한 비빌 언덕이다.


매일매일 서툴지만 온 마음을 다해 가족과 함께한다. 서로가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를 나누고, 한 번이라도 더 다가가 껴안고 뽀뽀를 전한다. 서로 먹고 싶은 것이 다를 땐 한 끼에 세 가지 메뉴를 각자 요리해 먹고, 가족 중 누군가가 책을 읽고 있으면 그 옆에 슬쩍 엉덩이를 디밀고 함께 책을 읽기도 한다. 남편이나 아이와 크게 다툰 날이면 마치 온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마음도 무너지던 나날을 지나 이제는 우리가 아무리 다퉈도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다시 사랑할 것임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


시간이 흘렀다. 잊을 수 없을 것 같던 기억들도 이제는 희미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날 방문을 열고 마주한 거실의 풍경은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얼마 전 트라우마라는 새 이름을 얻은 그 기억은 여전히 큰 액자처럼 내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이제 나는 이 기억을 양분 삼아 나의 가족과 계속 잘 살아가볼 생각이다.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들었던 그 시기에도 나는 죽지 않았고, 웃었고, 내가 가진 작은 것들에 집중했다. 그 기억은 나에게 가족이란 무엇이냐는 중요한 질문을 남겼고, 덕분에 나는 우리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 그것으로 되었다.


너무 복잡하고 장황하게 썼다. 나에게 가족이란, 결코 버리지 않는 관계이다. 그것이 나의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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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포포매거진>이 발행하는 뉴스레터 'pausing by popopo(포, 포포포)'에 게재된 글을 한 번 더 퇴고하고 서툰 그림을 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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