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란 무엇일까

[연재] 캥거루의 뛰다가 생각했어 03.

by 캥거루

어려서부터 잡생각이 많았다. 특히 나는 나에 대해 궁금했다. 나는 왜 살아야 할까, 내가 죽으면 누가 슬퍼할까, 정말 이혼 가정의 아이는 그렇지 않은 가정의 아이와 다를까, 나는 왜 할머니가 사랑해 주시는데도 엄마를 갖고 싶을까.


두 살 때 동생이 태어나며 할머니 댁에 보내졌다. 어른들은 내가 동생을 꼬집어서 보냈다고 하셨고,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자랐다. 막연히 스스로를 동생을 괴롭히는 질투심 많은 아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나의 아이를 낳고 주위를 둘러보니, 둘째가 태어났다고 첫째를 몇 년씩이나 시가에 보내는 일은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첫째가 둘째를 괴롭혀서 아이를 할머니에게 보냈다는 것은 말인지 방귀인지 모를 개떡같은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지금도 내가 왜 그때 할머니 댁에서 자랐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것은 아마도 나에 대한 어른들의 최선이었을 것이나 영문도 모르고 보내지는 아이의 입장에서는 버려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닐곱 살 때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여덟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며 다시 할머니와 살게 되었다. 할머니는 아빠를 빼닮은 나를 몹시도 예뻐하셨고, 교육열 강한 여느 엄마들처럼 열심히 가르치고 키워주셨다. 하지만 나의 곁에는 아빠도, 엄마도 없었고 동생이 보내 준 까만 콩을 보물처럼 간직할 정도로 종종 가족이 그리웠지만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것이 고작인 나날이었다. 내게 가족이란 세상에 존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허상과 같았다. 이혼한 집 아이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이른바 모범생이 되어 열심히 공부했지만 아무리 좋은 성적이 나와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손안에 쥔 모래와 같았다.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텅 빈 구멍은 내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관짝만큼 커졌는데 나는 어쩌자고 자꾸만 사랑을 받고 싶어서, 그저 언제나 외로웠다. 나는 그렇게 좀처럼 나를 긍정할 수도 확신할 수도 없이 몸만 자랐다.


10살 때 새엄마가 생겼다. 새엄마는 참 예뻤고 아빠를 많이 사랑했다. 빨간 립스틱을 바른 예쁜 엄마가 생긴다는 것은 어린 마음에 매우 기쁜 일이었고, 다시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만으로도 설렜다. 하지만 11살 때 새엄마가 막냇동생을 임신하며 나는 다시 할머니 댁으로 보내졌다. 임신한 몸으로 아이를 둘이나 돌보는 것은 힘든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빠가 임신으로 예민해진 새엄마와 살게 될 나를 걱정해 일부러 사랑하는 할머니 곁으로 보낸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무려 내가 37살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내가 다시 가족이 함께 사는 집으로 돌아온 것은 13살 겨울.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오게 된 것인지 이제는 돌아올 때가 되어 오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고, 가족의 집은 나에게 집이지만 집 같지 않은 너무도 낯선 곳이 되어 있었다. 아빠는 언제나 바빴고, 엄마는 냉정하고 무심했으며, 둘째 동생과 나는 서로를 경계했고, 막내는 너무 어렸다. 내가 기댈 곳은 친구와 책, 그리고 일기장 뿐이었다.




자라는 내내 막연히 엄마가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속상할 때 안아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엄마. 그런 엄마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은 지금도 가끔씩 생각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를 지지해 주는 존재로서의 이상적인 엄마를 늘 꿈꿔 왔다. 현실에 그런 엄마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십 대 후반이 되어 알게 되었지만 커질 대로 커진 이상은 제 몸집을 좀처럼 줄일 생각이 없었다.


아몬드 같은 눈을 가진 나의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의 벅찬 감정을 기억한다. 내 자식이란 이런 것이구나. 새엄마가 막내의 공부만 챙기고 막내만 패밀리 레스토랑에 데리고 간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쁨과 감동이 뒤섞인 가운데 퍼뜩 깨달았다. 이젠 내 차례다. 나의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키우셨든, 내가 자라며 얼마나 아팠든 이제 더 이상 그 깊고 끈적한 늪에 발을 담근 채 마냥 아파하기만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됐고, 나나 잘하자. 내가 잘 해야 나의 아이는 행복하게 자랄 수 있다. 그래야 아이도 자신의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줄 것이고, 아이의 아이 또 그 아이의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나에게는 현실적인 엄마의 상이 없었다. 엄마와 화목해 본 기억도, 제대로 갈등을 겪은 기억도 없이 자라왔기에, 살아오며 만난 다양한 엄마들과 그동안 읽어온 책을 바탕으로 만든 이상적인 엄마의 상을 좇아 아이를 키웠다. 시행착오가 많았다. 내가 할 수 있고 정말 원하는 엄마의 상을 찾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아이가 11살이 되고서야 엄마로서의 나를 진심으로 긍정하고 응원할 수 있었다. 내가 갖고 싶고 되고 싶었던 ‘이상적인 엄마’는 그야말로 이상일뿐 내가 원하는 엄마도, 아이가 원하는 엄마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짜는 따로 있었다.


답은 언제나 나에게 있다. 아이를 키우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놓지 않은 것. 그것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엄마다운 엄마 없이 살아온 시간 동안 그래도 내가 기댈 수 있었던 건 나를 사랑하냐는 질문에 과연 나를 사랑하는지조차 의심스러웠던 나를 낳아준 엄마가 스치듯 답한 ‘사랑하지’라는 그 한마디였다. 엄마의 그 한 마디는 미약하지만 나에 대한 근본적인 긍정과 같았다. 나도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그 실오라기 같은 가느다란 기쁨이 나를 죽지 않고 살게 했다. 엄마가 아이의 좌절이 되는 것은 참으로 가혹한 일이나, 그 좌절스러운 엄마조차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로 아이를 살게 했다면 그래도 괜찮은 엄마가 아닐까.


엄마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오롯이 아이에게 전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나의 답이다. 나는 아이에게 화가 날 때도 꼭 사랑한다고 말하고, 요리를 할 때도, 밥을 먹는 사이에도, 잠을 잘 때도 숨을 쉬는 것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공부를 못해도 되고, 울거나 떼를 써도 나는 너를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 있는 그대로의 네가 참 좋다고 때로는 습관처럼 그리고 때로는 마음을 담아 가능한 자주 말한다. 아이가 살아가며 만나게 될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아이를 사랑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행복한 순간만큼 큰 좌절의 순간도 찾아오겠지.


아이가 마주하게 될 모든 순간마다 비록 휘어지되 절대로 꺾이지 않는 버팀목이 되어 줄 사랑의 기억을 심어주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이자 최고의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간신히 진정시키는 부족하고 서툴기 그지없는 엄마이다. 하지만 그냥 그것이 나라는 엄마이고, 나와 아이는 그런 엄마인 나를 사랑한다. 그것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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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포포매거진>이 발행하는 뉴스레터 'pausing by popopo(포, 포포포)'에 게재된 글을 한 번 더 퇴고하고 서툰 그림을 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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