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부

내 가족이 된 언니 남친

by 란님


형부를 처음 만난 게 언제였더라, 언니와 형부가 결혼을 생각하기 시작할 즈음이었을 것이다. 주말 오후 집에 있다가, 언니를 데려다주러 온 형부를 처음 봤던 것 같다. 야구선수 중에서도 중심타자 못지않은 덩치에 천진한 미소를 장착한 사람이었다. 성격은 또 어찌나 서글한지, 어딜 가나 성격 좋다는 말을 듣던 나보다도 한참 더 성격이 좋아 보였다. 나는 언니의 결정에 참견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라 어차피 별말 못했겠지만, 세상의 잣대로 평가해도 형부는 경기도에 사는 것 말고는 트집 잡을 만한 거리가 없었다(지역 비하 아닙니다, 저는 서울에서 아주 먼 지방 출신 남자랑 결혼했습니다).


둘은 아주 뜨겁게 연애했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한 점은, 형부가 표현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형부는 애정을 드러내고 장점을 칭찬하는 데에 인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점마저 장점으로 바꾸어 볼 정도로 평가가 후한 편이었다. 나는 언니가 사랑받는 걸 보는 게 좋았다. 젊은 두 사람이 만나다 보니 싸우기도 했지만, 형부는 언니에게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고 언니도 괜한 기싸움으로 형부를 힘들게 하지 않았기에 늘 화해했다. 형부는 언니를 추켜세워주며 사랑한다 해주고, 언니는 그런 형부의 리드를 따라가며 형부를 존중해 주는, 좋은 관계였다.


둘은 결혼하여 아이 넷을 낳고 잘 살고 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지만, 결혼이 어디 사랑만으로 된다던가. 역할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가 많아 혼란을 겪고 다툼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서로를 사랑하며 자식보다 서로가 우선인 듯하다. 책임감 있는 장자의 모습과 자기만 우선시하는 맏이의 모습이 적당히 섞여있는 둘은 닮았다. 형부는 무엇보다 장모님(우리 엄마)의 마음을 저격했다. 엄마가 늘 갖고 싶어 하던 아들의 모습이 바로 형부 그 자체 아닐까 싶다. 부를 때도 "아들"이라고 부르시는 걸 보면 말이다.


이 점은 안사돈 어르신께 실례가 될 수도 있다고 보지만, 아드님만큼이나 성품이 너그러우신 분이라 그만큼 탐나는 아들을 두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며 좋아하실지도 모른다. 안사돈 어르신은 형부의 어릴 적 이야기를 아주 즐겁게 하신다. 마치 아들을 키우던 시간이 자신에게 커다란 기쁨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한 번은 형부가 놀이터에 보물이 묻혀 있으니 찾자고 하였기에, 같이 나가 깜깜해질 때까지 모래를 파헤치고 다녔다는 말씀도 하셨다. 나는 그게 너무 부러웠다. 어린 아들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귀담아 들어주고 함께 해주는 엄마라니, 내 주변에서는 본 적이 없다. 형부가 바르고 단단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안사돈 어르신의 공이 커 보인다. 아이의 안전감과 자존감을 높이는 데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이런 믿음, 그리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물론 돈도 많으면 좋다).


형부는 언니의 남편이지만, 내게 친오빠 같은 존재이다. 내가 가정사로 인해 좌절하고 방황하며 해외로 도피여행을 갈 때에도, 엄마나 언니와는 달리 형부는 나를 나무라지 않고 감싸주었다. 자신은 독남이라 부모님의 일을 돕느라 원하는 걸 해보지 못했다며 나는 원하는 대로 하라고 응원해 주었다. 해외살이 중에 한국에 돌아오면 형부와 언니의 신혼집에 가있었기에 진짜 가족처럼 같이 산 시간도 꽤 된다. 잠시나마 형부는 내게도 가장이고 집안의 어른이기도 했던 것이다. 사랑하는 내 조카들의 아버지가 된 지금은 더욱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결혼은 가족 간의 결합이다. 형부는 언니와 언니 가족의 버팀목이 되어주며 나와 엄마에게도 큰 힘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가끔은 조금 미안하고 불쌍하다. 그 많은 짐을 짊어지고 걷는 형부는 어디에 기댈 수 있단 말인가. 세속적 성공에는 관심이 없는 나이지만, 형부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부모님과 아내,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고 당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형부의 모습을 보며 느끼는 점이 많다. 부디 형부가 오래도록 건강하게 언니와 함께하며 행복한 기억을 많이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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