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어린 새로운 가족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 내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던 사람은 우리 조카이다. 막내로만 살아와서 나보다 어린 사람을 어찌 대해야 할지 모르던 내게, 기나긴 공백을 깨고 나타난 어린 식구.
나는 원래도 작고 귀여운 생명체를 예뻐하기는 했다. 하지만 잠깐의 "어머 귀여워"로 끝나지 않고 오래오래 마음이 간 건 조카가 처음이었다. 원체 가족을 가장 중시하고 사랑하던 사람이라 그럴까. 엄마와 언니뿐이던(형부도 친오빠 같긴 하지만 직계가족은 아니니 제외하고 말한다) 내 삶에 나타난 조카는 단숨에 최상위권을 차지해버렸다.
우리 조카는 한 성질 하는 언니와 형부를 닮아서 그런지 아이 때부터 눈빛이 강렬했다. 그냥 귀엽기만 한 게 아니라 맑은 눈동자로 사물의 본질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생이 된 지금도,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면모를 보인다. 대화를 나누어 보면 생각이 깊고 꽤 진중하다. 그림 그리기나 만들기도 또래에 비해 수준급이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 음악적 재능도 뛰어난 것 같다.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만, 맞다, 나는 조카바보다. 어느 정도냐 하면,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조카 목소리에 늦은 밤 서울 용산구에서 경기도 광주까지 택시를 타고 날아갈 정도였다. 애기 때는 보고 싶으면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였다. 10대가 된 지금이야 예전처럼 오구오구 하지야 않지만, 여전히 만나면 꼭 안고 빙그르르 돌려준다. 이제는 꽤나 무겁고 키도 커져서 올해가 마지막 아닐까 싶긴 하지만 말이다.
결혼을 서두르게 된 것도 조카가 너무 예뻐서이다. 사랑스러운 조카의 직계가족 범주 안에 내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에 외로움을 느껴 나만의 가족을 만들고 싶어졌다. 신랑을 결혼대상으로 보기 시작한 것도, 낯가림이 심하던 우리 조카가 신랑은 마음에 들어해서이다. 우리 신랑은 가장 중요한 처가댁 식구(조카)에게 단번에 낙점을 받아 우리 가족을 놀라게 했다. 아이들과 가깝게 지내는 '가정적인 아빠'를 원했던 나의 눈은 정확했다. 우리 신랑은 비슷한 연배의 남자들 중에서는 상위 5프로 안에 드는 좋은 아빠일 것이다. 최근에는 조금 아쉽긴 해도 여전히 상위권이다.
내 아이들이 생겨도 조카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다. 다만 아이가 없을 때만큼 많은 시간과 비용을 내어줄 수 없을 뿐이다. 흔히들 말하는 첫사랑의 감정이 이런 것 아닌가 싶다. 아련하게 남아 사라지지 않는 애정.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마음 같아서는 뭐라도 해주고 싶은 감정. 단단하게 자라나 원하는 일을 열심히 하며 만족감을 느끼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둘째 조카는 내가 결혼한 이후에 태어나서 첫째만큼 시간과 애정을 쏟지 못했다. 오히려 새로 태어난 둘째가 엄마(언니)의 품을 차지하는 동안, 첫째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마음을 쓰는 것이 이모의 역할이라 판단했다. 결국 둘째가 태어나도 첫째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진 것이다. 언니가 조금이나마 쉴 수 있게 가끔 첫째를 데리고 놀러 간다거나, 우리 집에 데리고 와 돌봐주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어느 정도 자란 후에는 첫째 조카와 놀러 갈 때 둘째 조카도 데리고 갔다. 많은 횟수는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잘 따르고 좋아해 주어서 고마웠다.
둘째 조카는 나의 어릴 적 모습을 자꾸 겹쳐보게 되는 아이이다. 자기가 얼마나 예쁜지를 모르고 엄마의 인정에 목말라하며 다른 사람을 늘 배려한다. 나는 둘째 조카를 만날 때마다 그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말해주려고 노력한다. 내가 겪었던 자존감 혼란을 이 아이는 나보다 빨리 벗어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둘째 조카는 잘하는 게 많다. 특히 손을 사용하여 만드는 일은 다 잘한다. 레고스토어에서도 가이드맵 없이 혼자서 바오밥나무 같은 나무를 지어올려 나를 감탄하게 했다. 발레학원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고 하고, 사촌동생들(나의 아이들)과도 가장 잘 놀아주어 인기도 1순위이다. 기발한 생각도 정말 많이 한다. 무엇보다 끈기 있게 해내는 저력이 있다. 둘째 조카가 살면서 무얼하기로 택할지가 기대된다. 그게 무엇이든 우리 생각의 틀을 깨는 일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셋째 조카는 내가 서울과 3시간 반 거리에 있던 지방도시에 살고 있을 때 태어났다. 조카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서울로 돌아왔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람들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게 되었다. 가족이라 가끔 만나기는 했지만 둘째 때와 마찬가지로, 언니를 위해 첫째와 둘째를 봐주는 일이 나의 역할이라 생각했기에 셋째와는 추억은 거의 없다. 놀아줄 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는 내가 아이를 셋이나 가지면서 바빠졌고, 일곱 살 즈음부터 유의미한 교류가 시작되었지만 언니들의 그것에 비할 바는 아니다. 동그란 눈을 가진 사랑스러운 아이, 이모를 좋아하는 언니들의 마음을 공감하지 못할 것 같아서 미안할 따름이다.
넷째 조카는 유일하게 우리 아이들보다 어리다. 누나 셋이 만들어 둔 꽃밭에서 예쁨을 받으며 자랄 막내가 태어났다. 우리 아들들과 한 팀 먹고 놀아줄 사촌동생, 집안 어르신들이 안심하시도록 대를 이을 손주. 사랑이 가득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들과는 한 살 차이로 키는 비슷하지만 같이 있으면 막내티가 흐른다. 말을 얼마나 잘하는지 형아들보다도 말이 많은데 발음까지 정확하다. 얼마 전 "이모 저 씻고 나왔어요"라고 말하는 걸 듣고는 8살짜리 누나가 말한 것인 줄 알았을 정도이다. 아직 5살인데다 늘 엄마와 외할머니 품에서 자라느라 함께한 기억은 없지만, 앞으로 기회가 점점 많아지리라.
언니네는 네 명, 우리집은 세 명, 다같이 모이면 일곱 명의 아이들이 왁자지껄하게 논다. 다복하고 따뜻한 가족이 만들어져서 감사하다. 내 아이들 다음으로 사랑하는 존재들, 모두가 몸과 마음 건강하게 잘 자라길 이모가 기도하고 축복할게. 사촌끼리도 잘 지낼 수 있도록 이모랑 엄마가 노력할게.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