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4일
어젯밤 잉여로움을 즐기다가 새벽 3시에 잤다. 라면 먹은 것도 소화시켜야 했고 빨래를 정리하고 드라마를 틀어둔 채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알아보았는데, 중간에 다리가 아프다고 우는 아이를 달래고 나오느라 시간도 지연되었고 이래저래 버티다 보니 3시가 되어 버렸다. 3시까지 무언가 계속하고는 있었음에도 머릿속이 하나도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이 킬포(킬링포인트)다. 절대적인 시간의 양은 중요하지만, 투여한 시간의 양과 생산적인 결과의 양이 비례하는 것은 결코 아닌 것 같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의 흐름은 빨라지기에 기획노동이 더 중요해지는 느낌이다.
더 늦게 자면 다음날 컨디션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 침실로 들어가, 자고 있는 신랑의 안경을 벗겨주려 했더니 신랑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거실로 나간다. 밤 12시쯤 컴퓨터 책상에 앉아 졸고 있는 신랑을 깨워 침대에 눕혔건만, 3시간 만에 또 할 일이 있다며 나가겠다니. 졸음을 이기지 못해 헤롱대면서도 강제로 잠을 깨워 보겠다고 커피를 타고 있다. 저만큼 졸린데 잠도 못 자고 일해야 한다니 짠하다. 가장의 무게란 저런 것일까. 이제는 건강을 챙기는 것도 중요한 나이가 되었으니 좀 더 계획적으로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잔소리일 뿐이니 말하지 않는다. 신랑과 함께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내일 아침 아이들을 볼 사람이 필요하니 나는 그냥 자기로 한다. 침대 위에 헝클어져 있는 아이들의 자세를 다듬어주고 베개와 이불을 챙긴 다음 나도 누웠다.
아침 7시 반, 셋째가 거실로 나가는 소리에 깼다. 거실은 추울 수도 있으니 옷을 챙겨 입히고 칫솔을 쥐어준 다음, 다른 아이들도 옷을 입히며 천천히 깨운다. 물통에 물을 담아 가방에 담고, 시리얼을 먹이고 머리를 빗겨주고 로션과 선크림까지 발라주면 등원준비 완료이다. 아이들이 등원한 후에는 이불 빨래를 시작한다. 밤늦게 뭔가를 먹어서 그런가 아침부터 배가 고프길래, 한 봉지 남은 죠리퐁을 뜯어 우유에 말아먹었다. 오늘은 문장 공유방에 내 담당인 날이라 요즘 보는 드라마 <러브 미>에서 발췌해 둔 구절을 적어 보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은 이것이다.
"비관주의자가 아무리 속된 말을 끼얹어도, 이상주의자는 오늘 밤 참으로 편안하고 술도 달달했다네."
오랜만에 여유롭게 앉아서 봄 여름 티셔츠랑 아이들 영양제를 쇼핑하고, 떡볶이를 주문하여 신랑과 나눠 먹었다. 오후에는 우리 집 문 앞에 도착한 지 16일이 지난 새 휴대폰을 드디어 뜯었다. '어차피 이렇게 늦게 뜯을 거, 일찍 사면 뭐 하나' 싶기도 하지만 출시 이벤트로 주는 더블스토리지는 포기할 수 없었다. 액정보호필름을 붙이고 유심칩을 끼우고 케이스를 씌워 초기세팅을 마쳤다. 파일 공유 앱을 통해 쉽게 시작할 수도 있지만, 새로 산 폰에 3년 동안 쓴 옛 폰의 무거워진 앱과 파일들을 그대로 옮겨오고 싶지 않기에 새로운 설정을 시작한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카톡 옮기는 게 가장 번거롭다. 탈퇴해 버리고 다시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샘솟지만, 내가 편한 대신 주변인들 모두가 불편하지 않을까 싶어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다.
바깥은 아직도 미세먼지가 가득하여 가시거리가 짧다. 우리 집보다 높은 건물이 많지 않은 동네에서 살다 보니 시야가 확 트여 먼지 정도를 가늠하기가 더 쉽다. 숨이 턱 막힌다. 이 지역의 많은 장점 중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우리나라에서 미세먼지가 가장 적은 편이라는 것이지만, 이 지역도 서울보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 1년에 며칠 정도는 있다. 하지만 유독 올해 미세먼지가 지독하게 오래가는 듯하다. 이사 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공기청정기 전원을 뽑아놓고 살았는데 다시 꽂아야겠다(전원 코드를 어디에 뒀더라). 목에 먼지가 가득 껴서 기침 가래로 고생한 지 2주 정도 된 것 같다. 특히 오늘은 종일 목이 간질간질하여 계속 기침을 하느라 목과 배 근육이 아플 지경이다. 이 지역 명물인 강력한 바람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어서 불어와 먼지를 흩어다오. 대기오염이 적은 곳에서 살고 싶다.
마지막 이불 빨래를 건조기에 넣어놓고 침대를 정리하니 아이들이 도착했다. 청소기를 돌려놓고 오늘의 저녁식사 메뉴인 콩나물 삼겹살 볶음을 준비한다. 콩나물을 여러 번 잘 씻은 다음 커다란 냄비 바닥에 깔고, 얼려둔 파 조각들도 담는다. 그 위에 냉동삼겹살을 수북하게 올린 다음 뚜껑을 덮어 데우다가, 물이 생기기 시작하면 섞어준다. 고기 냄새가 나지 않도록 후추와 간장도 넣어주고, 느끼한 기름이 사라질 때까지 볶아주면 완성이다. 아이들 몫을 덜어놓고 어른용에는 고춧가루를 팍팍 뿌려 다시 볶았다. 신랑이 좋아하는 재첩국(밀키트)도 다진 마늘을 잔뜩 넣어 끓여 내었다.
저녁 먹은 걸 치우는 동안 신랑은 아이들을 씻기고, 다들 씻은 다음에는 책을 읽어주었다. 그런데 종일 기침하느라 목을 많이 썼더니 목 안쪽이 너무 아파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다. 원래 1인당 1편씩, 3편은 읽어주고 자는 게 보통이지만 2편까지 읽고 나니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힘들어서 다리만 얼른 주물러 주고, 더 보고 싶다 우는 첫째를 안아 토닥여주다 잠들었다. 1시가 넘어서야 다시 눈을 떴는데, 생각해 보니 브런치에 일기를 안 올리고 잤다. 연재 중인 것도 아니고 계약을 한 것도 아니니 그냥 자버릴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매일 쓰기로 스스로 마음먹은 것이니 귀찮아도 얼른 써놓고 자기로 했다. 모두가 잠든 집 거실에 홀로 앉아 일기를 올려놓고 마음 편하게 잠들었다. 이왕 할 거면 12시 전에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지. Better late than n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