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
오랜만에 보는 뿌연 하늘이다. 흐린 듯 미세먼지 가득한 날, 이런 날은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한지에 먹으로 그린 산수화를 보는 것 같다. 기관지가 예민하여 먼지 많은 날에는 숨만 쉬어도 두통이 찾아오지만, 예쁜 모습은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 찰칵 소리에 아이들이 하나 둘 잠에서 깬다. 계란을 구워 모닝빵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이고 기분 좋게 등원시켰다.
전날 밤 아이들을 재우다 함께 잠들어 버리는 바람에 글쓰기 과제를 제때 못 냈다. 새벽 2시에 눈을 뜨고 나서야 다시 작업을 시작했는데, 조사할 자료가 많아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마음에 차지 않는 결과물이었지만 이미 마감시간을 훌쩍 넘긴 터라, 더 다듬지 않고 멈추기로 했다. 완성도를 높이는 것보다 시간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은 나이를 먹고서야 깨달았다. 일찍 깨달았더라면 사는 게 조금 더 편했을 텐데 아쉽다.
아이들을 등원시킨 후에는 1시간 반 정도 잠을 보충했다. 잠을 조금 잤더니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멍했기 때문이다. 6시간 이상 연속으로 푹 자는 게 좋다는 걸 알지만 대낮에 그러기는 힘들고, 오늘 하루를 버텨내려면 잠깐 자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점심 약속에 나가 지난가을부터 교류해 온 분들과 맛있는 로컬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교류하기로 정하면 처음부터 자신을 전체공개 하려 드는 나와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천히 자신을 보여주며 다른 이를 알아간다. 만남의 횟수가 쌓일수록 조금 더 알아가는 느낌이 들어 사람을 만나는 게 좋다. 곁에 앉아 직접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것에는, 전화나 메시지로 교류할 때 느낄 수 없는 깊이가 있다.
할 일을 끝낸 신랑이 데리러 와주어 편안하게 귀가했다. 연애할 때랑 비교하면 너무 다른 사람이 된 지라 애정이 식었나 슬퍼질 때가 많지만, 이런 작은 제스처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풀린다. 귀가한 후에는 쌓여있는 집안일을 서둘러 처리하고 아이들이 집에 오기 전에 또 낮잠을 잤다. 하원한 아이들이 엄마를 발견하고는 내복만 입고 이불로 뛰어드는 바람에 잠은 조금 설쳤지만 행복했다.
신랑의 고함 소리에 깨어보니 집안이 깨끗해져 있었다. 나는 요즘 정리를 포기하고 사는데, 보다 못한 신랑이 아이들과 함께 집을 치우고 있었다. 정리를 좋아할 리 없는 아이들이 딴청을 부리자 화가 난 신랑이 호통을 쳤던 것이다. 아빠가 소리 지르는 모습이 여러 번 반복되자 아이들은 놀라서 울고 있었다. 괜찮다 다독이며 안아줬더니, 서럽게 울다 스르르 잠들어 버린다. 하원버스까지 데리러 갔다가 공용정원에서 킥보드도 잠깐 태우고, 집에 들어와서는 놀아주고 달래 가며 청소를 시켰을 모습이 눈에 훤하다. 그 모든 고생이 버럭 몇 번에 무용지물이 된 것이 안타깝다.
신랑은 좋은 아빠이다. 가끔씩, 본인이 어릴 때 보고 자란 모습이 튀어나오는 걸 막지 못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그건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고 극복하는 과정을 거쳐야 멈출 수 있는 일인데, 신랑은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편이다. 사람은 누구나 약한 부분이 있는데, 가끔은 약해져도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육아 유튜브에서, 엄마가 소리 치면 '또 저런다' 귀찮아하고 말지만 아빠가 소리를 지르면 위협적인 모습에 공포감을 느낀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오늘 울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아빠라고 아이들에게 무서운 상처를 남기기를 원할 리 없다. 잔소리하기 싫지만, 아빠와 아이들이 계속 좋은 관계로 남을 수 있도록 옆에서 계속 일깨워주어야겠다.
일어난 김에 저녁 준비를 한다. 채소를 잘게 썰어 냉동실에 남은 고기와 함께 볶아 카레를 만들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매워서 못 먹겠다고 한다. 밥솥에 있는 밥은 이미 카레에 다 비벼 버렸는데 말이다. 결국 신랑이 얼른 내려가 1층 편의점에서 즉석밥을 사 왔다. 데워준 즉석밥을 김에 싸서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허탈하다. 처음부터 다 같이 그냥 김에 싸서 먹을 것을, 나의 1시간을 돌려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