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록새록

2월 23일

by 란님


이불을 달라는 첫째 목소리에 깨 보니 7시 반이다. 8시 50분까지 근처 병원에 가야 해서 준비하고 나서는데 첫째가 아침밥을 달라고 한다. 엄마 다녀와서 같이 먹자 했더니 안 된다며 지금 달란다. "금방 올 거니까 기다려, 돌아오는 길에 사 올게" 하고 그냥 나왔다. 6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갑상선 초음파를 본다. 오늘도 검사 후 다시 6개월 후로 예약을 잡고 나왔다.


숙소 건너편에는 아이들이 태어난 병원이 있다. 5년 전 이곳에서 아이들을 출산하고 입원해 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서 기분이 묘했다. 아이들을 건강하게 출산한 것은 최고로 행복한 일이었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은 분명 행복했던 기억은 아니다. 나는 그날 과다출혈로 죽을 뻔했고, 몸이 회복되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상처도 아물었고 체도 정상적으로 기능하지만, 체력과 건강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코로나 시기라 입원기간 동안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없어 답답했는데, 이제는 1층에 스타벅스가 생겼라. 소금빵 3개와 밀크티를 사고 우유는 편의점에서 구매했다. 어제 카페에서 살 때는 우유 한 잔 4천 원대였는데, 편의점에서는 2+1으로 3팩이 2천 원대였다.


아침밥을 들고 뿌듯한 마음으로 숙소 문을 열었는데, 아이들이 방 한구석에 모여 앉아 키득거리고 있다. 엄마 가방 속에서 발견한 약국용 비타민 캔디 한 봉지를 전부 다 먹어 버렸다. 사고뭉치인 게 날 닮은 것 같아 우습기도 하고 밥을 안 준 게 미안하기도 하여 쓰레기를 잘 치우라고만 말해주었다. 캔디를 안 주는 이유는 설탕 섭취량을 조절해야 해서이기도 하지만, 단맛이 강해 사량에 영향을 줄 것 같아서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빵이라 그런지 영향을 받지 않고 잘 먹어 다행이었다.



식사가 끝난 후 아빠를 깨워서 롯데월드로 출발다. 방학기간이기는 해도 긴 연휴가 지나고 난 평일이니 좀 낫겠지 라는 건 나의 착각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놀이기구 하나를 타는데 90분이나 걸렸다. 직원분이 90분이라 안내할 때는 '원래 안내는 넉넉하게 하는 거지' 생각했는데, 진짜로 90분이 걸렸다. 그마저도 키 110cm가 안 되는 우리 막내는 기다리지 못하고 엄마와 놀이공원 내부를 구경했는데 말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티니핑 캐릭터와의 포토타임이 있다기에 15분 전에 갔는데 30분 전 이미 마감되었다고 한다. 티니핑의 인기가 정말 대단하다. 멀찌감치 서서 티니핑을 바라보다, 아이들 범퍼카 한 번 타니 낮시간 퍼레이드 시작 35분 전이다. 뭔가를 기다렸다 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여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퍼레이드를 보고 나왔다. 11시 반쯤 도착하여 14시 반쯤 나왔으니 3시간을 있었는데, 놀이기구는 한두 개 타고 퍼레이드만 보고 나온 것이다. 다리도 아프고 허탈하다.


롯데월드에 있는 동안 팝콘과 츄러스만 먹었으니 뭔가를 먹어야 한다. 좋아하는 만두가게에 가서 만두 여러 판과 떡국을 주문해 맛있게 먹는데, 주문한 고기군만두 대신 김치군만두를 주셨다. 김치만두도 맛있긴 하지만 아이들이 못 먹는다는 게 치명적 단점이다. 더 큰 문제는 지난번에 왔을 때도 추가 주문한 만두를 김치로 잘못 가져다주셨다는 거. 그때는 아무 말 없이 그냥 먹고 나왔지만 다음에 또 그러시면 안 되니까, 나오는 길에 사실관계 전달과 함께 확인에 좀 더 신경 써달라고 말하고 나왔다(저는 고기만두가 더 좋단 말입니다).


친언니 찬스로 백화점 라운지에서 음료 받아와 마시면서 다음 목적지인 대전으로 출발했다. 천안에 가는 길에 하루 일찍 내려가 대전에서 묵는다. 노잼도시로 유명한 대전을 나는 좋아한다. 유해시설도 적고, 큰 도시이지만 뭔가를 내세우는 느낌 없이 무난하다. 근처에 갈 곳도 많고 다른 지역에 가는 길에 들렀다 가기에도 좋은 위치이다. 때문에 자주는 못 가지만 꾸준하게 종종 가고 있다.


아빠가 안전하게 운전하며 내려오는 길에 아이들은 낮잠 잤고, 나는 글을 썼다. 글쓰기를 마친 후에 신랑에게 고민을 상담했다.

"오빠, 나는 롯데월드 티니핑 행사가 3월 22일까지인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3월 2일까지였네. 티니핑 공연을 하나도 못 보고 왔는데, 보여주려면 2일 전에 또 가야 한다는 거잖아(우리 가족은 연간회원권을 갖고 있다). 여행일정을 수정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언제가 좋을까? 오빠는 의견 있어?"

그랬더니 갑자기 를 버럭 낸다. 아마도 여행을 연장할까 봐 그런가 싶은데, 나는 그러겠다고 한 적이 없다. 괜히 자기 혼자 거기까지 생각하고 화를 낸 것이다. 계속 말해봐야 싸우기만 할 테니 "나는 말 안 할 테니까, 도대체 왜 화가 난 건지 스스로 생각해 보고 5분 뒤에 나한테 얘기 좀 해줘"라고 해놓고 도착하는 바람에 다시 물어보 못했다.


대전에 도착한 후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자 원하는 메뉴를 주문해 밥을 먹었다. 나는 연어동, 신랑은 에비텐동, 아이들은 돈가스와 우동. 모두 같은 동 메뉴인데 각각 다른 집에서 주문해야 하는 게 웃겼다. 밥을 다 먹은 후에는 젤라또와 땅콩빵을 사 먹고 숙소로 갔다. 이곳 숙소는 처녀시절 프로야구 원정 관람을 왔을 때 절친과 함께 묵었던 곳이다. 둘이서 생선구이도 사 먹고 성심당 케이크 부티크에도 다녀온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때는 지금의 내 삶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더랬다. 이제는 야구관람 같이 시간이 많이 드는 취미를 갖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이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는, 또 어떤 상상 못 한 상황 속을 살고 있을지 생각해 보면 인생 참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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