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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열타자기 Feb 12. 2017

내 의지대로 산다는 것

어제 모처럼 고향에 내려와 웹툰 작가 준비를 하고 있는 동네 친구를 만났다. 중학교 시절 일본 애니메이션을 같이 보면서 연습장에 같이 만화를 그리며 놀던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그리던 만화가 너무 재미있어서 반 친구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닥터 슬럼프, 드래곤 퀘스트 류의 판타지 만화였다.) 당연히 만화가가 될 줄 알았는데 대학 입시 당시 부모님의 반대, 경제적인 이유로 오랜 시간 꿈을 내려놓고 평범한 사회인으로 살다가 더 늦기 전에 후회하기 싫다며 다니던 직장을 내려놓고 고향에 내려와 1년 째 차근차근 수련 중이다.    

  

스스로 자기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막막하고 고통스러운 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 친구를 돕고자 나 역시 지원 혜택을 받은 적이 있는 대전정보문화산업 진흥원 담당자 분을 소개시켜줬고, 그 인연으로 이곳에서 교육을 수료해 작가 지원금까지 받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소고기를 얻어먹었다.) 주변에서는 현실을 이유로 이 친구를 걱정하거나 지극히 자기 기준에서 내 친구를 깎아내리려는 우려가 있는데, 스스로의 소리에 기울여 후회 없이 살고자하는 자기 의지에 의해 결정한 내 친구의 결정이 매우 멋지고 부럽다.     


사회인으로 경제활동을 시작한 이래 (누구나 겪는 것처럼) 수차례 내적 갈등과 봉합의 연속이었다. 진짜 원하는 일을 경제적, 상황을 이유로 온전한 직업으로 유지하지 못했지만 산업적으로 ‘응용한’형태로 좋아하는 일과 먹고사는 일 사이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갔다. (그리고 3년 전에는 독립도 했다.) 주변에서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어디에 속하지 않고 자유를 얻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며 부러워했다.

     


다만 산업의 영역에서 응용된 분야다보니 철저하게 산술적이고 폭력적인 기준으로 일의 수준과 결과를 평가받을 수밖에 없고, B2B 형태의 일이 많다보니 내 의지가 아닌 주변 환경과 미션에 따라 나를 구겨 넣거나 지워야 하는 일이 많았다. 이런 시간이 누적되고 반복되니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갈증은 점점 커졌고, 과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정말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조차 들었다.


스스로 너무 지치고 힘들어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내 의지보다는 주어진 상황에 매우 충실하게 살아왔던 탓이 아니었을까.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기에 쫓기며 살 수 밖에 없던 이유 내 의지가 우선이 아닌 철저하게 주어진 상황에 맞춰 살아왔던 것 같다. (내적인 괴리가 무척 컸지만 나를 지우고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몸담고 있던 곳마다 인정받을 수 있었고 이게 나를 억지로 버티게 한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더불어 주어진 미션을 해내지 못하거나 힘든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부끄럽다 생각한 내 자존심이 스스로를 더 힘들게 만들었던 것 같다.     


어릴 때는 가진 능력, 경험 모두 부족하기에 상황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이제는 어느 정도 스스로 컨트롤하고 바꿔갈 수 있는 능력과 내공이 ‘아주 미약하게’ 생겼으니 더 이상 상황 탓을 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내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확신, 의지가 부족했고 이를 열악한 현실 탓으로 돌렸던 건 아닐까. 상황만 맞춰 살다간 의지에 상관없이 계속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30 중반이 되고, 독립한 지 3년차가 되니 생각이 많아진다. 주어진 상황이 아닌 내 의지대로 산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울 줄 몰랐다. 이제는 조금 더 구체적이고, 자주적인 인생의 로드맵을 그려봐야 할 때가 아닐까. 조금 더 나의 행복을 우선으로 방향을 결정할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최창규 (THINK TANK Contents Director & Founder) : https://www.facebook.com/cckculture

THINK TANK Contents : http://blog.naver.com/thinktank_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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