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터넷 모 커뮤니티에서 그런 글을보았다. 자신이 속된 말로 '썸'을 타는 친구가 있는데, 막 발전하려는 초기 단계에 우울증을 고백해 왔다는 것이다. 정리할지, 아니면 계속해도 괜찮은지를 묻고 있었다. 댓글에는그만하라는 의견들이 많았다. 이미 많이 발전된 사이가 아니라면 굳이 시작하지 않는 게 낫다는 조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거 쉬운 일 아니라고.
"I have a depression."
처음 내가 짝꿍으로부터 자신이 우울증이라는 고백을 들은 것도 관계가 막 발전하기 시작했던 때였다. 돌이켜보건대 당시엔 그 말의 함의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냥 우울증이 있구나 정도로 매우 담백하게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짝꿍은 약을 복용하며 잘 관리된 상태였고, 거친 시간이 찾아오더라도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사이이기에 드러내기보다 잘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평소나 스스로를 꽤 비관적이고 염세적이라 정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름 일가견이 있는 줄로만 알았다. 실제로는 우울증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했다. 우울한 감정을 일시적으로 느끼는 것과 우울증은 성격이 다르다는 것도 이제야 안다.
그 글을 보며나에게 물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 짝꿍으로부터 다시 그 고백을 듣는다면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아주아주 솔직히 말해서 지금 시간을 되돌린다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쪽을 선택해 버릴것만 같다. 그만큼 생에 걸친 우울증을 앓고 있는 그를온전히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근 몇 년 새 어디 영화에나 나올 법한 우환들을 겪으며 짝꿍의 우울증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몇 개월은 약까지 중단하고 있는 최악의 상황이다. 그간 짝꿍의 삶에서 가장 심각한 상태의 우울증을 그도, 나 역시도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는 중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함께 고작 8개월을 지낸 지금, 이 8개월이 지난 7년의 관계를 모두 잠식해 버릴 정도다. 무모하게, 무지하게 시작한 이 관계를 버텨내는 이유는 단 하나다. 사랑도 사랑이겠지만 무엇보다 그에 대한 책임 때문이다.
'어린왕자'를 어려서부터좋아해 여러 번 읽어왔다.
"네가 길들인 것에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넌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시간을 들여 서로에게 의미가 되었기에 책임이 있다. 그는 나의 장미다. 게다가 그의 우울증이 이토록 깊어진 데에는 나의 지분도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간무지했기에 가능했던 실수들을 이제는 만회해보려 한다.
그 어떻게든 '함께' 해보려는 이야기를, 우울증인 짝꿍과 살아보기 위한 고군분투기를 조금씩 적어보려고 한다. 되려 내가 무너질 것 같을 때 도움이 되었던 조언들도 나눠보려 한다. 마치 교육적인 척해보지만 어쩌면 이렇게나마 속풀이를 하지 않으면 온통 썩어문드러질 것 같아 탈출구를 이렇게 찾는지도 모르겠다. 우울증의 정도나 예후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주변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가족이나 친구, 연인이 있다면 누군가는 나 같은 시행착오는 덜 했으면 하는 바람도 함께 담아본다.
뻔하지만 다시 한번.
"When your world seems to be collapsing, I am still here for you. You are not alone. I lov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