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고 또 구르고 인내하고 또 인내하고
짝꿍이 신경정신과에 자진 입원을 하여 폐쇄병동에서 2주 간의 시간을 보내고 나온 지가 꼬박 6개월, 반년이 되었다. 퇴원 직후 너무 빨리 자신을 내보낸 것이 아닌지 두려워했고, 그 두려움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다시 시작되는 여러 부작용과 불안, 공황, 우울과 분노를 경험하며 구르고 또 굴렀다.
약물 안정을 향한 대장정
기존에 거의 10년을 복용해 오다 중단했던 팍실 대신 프로작으로 바꿔 먹으며 퇴원하게 되었었다. 본인이 느끼기에 프로작이 이전 팍실을 복용할 때는 그리 강하게 느끼지 않던 불안과 공황을 더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하여 최근 3개월에 걸쳐 점진적으로 팍실로 도로 전환하는 과정을 막 마쳤다. 프로작 40mg에서 팍실 30mg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셈이다. 그래서 팍실 30mg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느냐고? 겉보기엔 잘 모르겠다. 가끔은 그가 목각인형처럼 보일 때가 있다. 분노나 짜증 이외에는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어떤 상태를 지나고 있는지 세세히 알지 못한다. 답답하다. 말해주지 않으니 내 눈에 비친 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인내심의 렌즈를 끼워 봐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도 있다. 여러 번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네 보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문장의 답변을 들어보지 못했다. Well, maybe, umm. 그러니 그저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지기를,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은 모습이기를 기대할 뿐이다. 짐작컨대, 그의 고통은 그다지 사그라들지 않았음에 분명하다. 여기에 끝이 과연 있을까.
퇴색되어 가는 우리의 관계
대부분의 시간을 그는 자신의 방 안에 틀어박혀 보낸다. 온라인 게임을 하고, 나름의 리서치를 비롯한 개인 공부 같은 것들을 한다. 우리가 대화를 하는 시간은 하루에 채 10분 정도 되려나. 그나마도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필요한 대화 정도에 그친다. 식사는 뭐 어떻게 하겠느냐 물어보려 문을 두드렸다가, 의도치 않게 방해라도 했다 치면 어김없이 그의 분노가 내 위로 가득 쏟아진다. 그럴 때마다 주문을 외웠다.
'저 분노는 나를 향한 것이 아니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이 사람은 제 3자이다. 내가 아는 그가 아니다.'
가혹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출처를 알 수 없는 분노를 감당하는 나 자신 역시 지속적인 충격에 노출되고 있다. 나름의 방어기제였다. 우울증을 머리로 이해를 하는 것과,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연인을 바라보며 가슴으로 이해하려는 과정은 언제나 갈등을 마주한다. 모든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같은 모습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고 밝혀두고 싶은 부분이다. 다만 짝꿍의 경우에는 오래된 우울증이 악화되다 보니 사소한 일인데도 분노를 경험하는 자신에게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그럴수록 자괴감은 더욱 크리라 조심스레 추정해 보는 것이다. 묵은 우울증이 이제는 분노의 형태로 바뀌어 간다며 두려워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가끔은 묻게 된다. 이 지독한 방해꾼인 우울증이 끝내는 사랑의 감정을 완전히 질식시켜 버리는 것은 아닐까. 씨앗으로나마 품어둔 이 사랑이 더 이상 싹 틔우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내면의 고통으로 점철된 그에게 두 사람이 하는 사랑이라는 복잡한 상호 작용은 현재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강요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럴수록 나 자신은 자꾸만 슬퍼진다. 아마 이 사람을 너무 사랑하기에 느끼는 서운함일 테다.
처음 이주하여 마주한 상황에 대한 충격이 컸던 나는 꾸준히 다가오는 그를 밀어냈었다. 오랫동안 나를 어떤 구원으로 여겼을 텐데 그런 희망을 실현시켜 주지 못한 것이었다. 어떤 그림을 머릿속에 그렸던, 내 그림과 그의 그림은 서로 들어맞지 않았고, 각자의 그림 어느 것도 정답이 아닌 채 현실 앞에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자살'이라는 두 글자가 서로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고 끝내 짝꿍 가족들에게까지 SOS를 보내야 했을 때는 더 이상 살려낼 관계의 불씨가 남아있지 않은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이제는 한 사람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1순위에 올라섰기 때문에, 사랑하는 감정을 보살피고 키워내는 문제는 요원한 후순위로 밀려난 것이었다.
네가 웃으면 나도 좋아
스스로가 너무 힘들고 괴로운데 아무래도 내가 편하다 보니 부정적인 감정들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겠지, 본인도 좋아 그러는 것이 아님을 안다. 그럼에도 모든 화살이 나에게 와 꽂힌다는 느낌이 쉽사리 가시지 않을 때가 있다. 어쩔 때는 내 얼굴만 봐도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하는 모든 말이나 행동에 가시 돋친 모습을 보인다. 지독한 사춘기를 겪으며 아주 제멋대로였던 내가 떠오를 정도다. 물론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들이 결코 나로 인한 것도, 나를 향한 것도 아님을 되새겨 보지만 결국 이 혼란은 각자 몫의 처절한 싸움이다. 극단적으로는 옆에서 숨 쉬는 것조차 예민해하는데, 대체 나더러 왜 여기까지 오라고 했나 싶은 마음이 폭풍처럼 몰아친다. 마지막에는 나의 쓸모에 대해 생각한다. 자책도 하게 된다.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한편으론 과연 이게 마음의 병이 있는 이유로 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면면인지에 대해서도 묻게 된다. 어느 경계까지 선을 그어야만 할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잠자코 묵묵히 곁에서 인내심을 갖고 바라봐 주고 지지를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자꾸만 타들어 가는 마음이 어느 순간 감당 가능한 수준을 넘으면 어쩌나 두려워지기도 한다. 나마저 마음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럼에도 종종 아침에 일어난 얼굴이 찌푸려져 있지 않을 때, 준비한 음식이 맛있었다고 말해줄 때, 이것저것 하자고 어떤 계획을 읊어낼 때, 그냥 따뜻하게 바라봐 줄 때, 심지어 어떤 것에 웃기까지 할 때.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바뀌고 내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든다. 그의 감정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나 자신을 보며 적어도 나는 내가 왜 슬픈지에 대한 원인은 알게 된다. 어떤 면에서는 좀 더 무뎌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어떤 부분은 기대를 조금은 접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여린 나의 속이 단단히 여물어야 할 텐데.
신호등 같은 것이 있었으면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 정신과 의사, 2주 간격의 심리상담사 방문 때마다 쫓아다니고 있지만 환자의 보안 문제로 심리상담에는 동석을 하지 못한다. 다만 정신과 의사 면담 때는 뒤편에 앉아 대화를 듣는다. 그때 그의 상태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고 객관화가 가능해진다. 저기 앉아 있는 저 낯선 이가 나보다 아마 그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따금 나의 인내심의 그릇이 차올라 넘쳐흘러버렸던 때가 있었다. 면담 시간에 그동안 이랬다 저랬다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드디어 이해를 하게 된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렇게 힘들었구나. 그 사람 어딘가에 신호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빨간불인지 초록불인지. 건너가도 되는 때인지 아니면 멈춰 서서 바라봐야 하는 때인지 알 수 있도록.
지금으로써는 고통의 심연에서 어느 정도 안정의 길로 들어서기를 바랄 뿐이다. 그럼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의 사랑을 보살피고 키워 나가는 데에 집중할 수 있는 때가 다시 돌아오겠지. 그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