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 계약은 계약서만? 이메일도 계약이 됩니다

- 법원은 언제 ‘이메일 합의’를 진짜 계약으로 인정할까

by 송송


업무를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받는 일이 있습니다.
"계약서는 이미 체결했어요. 그런데 그 뒤에 조건을 조금 바꾸기로 하고 이메일로 주고받았거든요. 그 이메일 내용도 계약에 포함되나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이메일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법적 구속력 있는 ‘계약의 일부’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계약 체결 이후 이메일로 주고받은 합의가 법적으로 어떤 조건에서 효력을 가질 수 있는지, 그리고 실무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정리해드리려 합니다.



계약 체결 이후의 이메일, ‘특약’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메일로 주고받은 합의도 계약 내용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자문서는 단지 전자적 형태라는 이유만으로 법적 효력이 부정되지 않는다.” 즉, 이메일도 문서입니다. 이메일로 합의한 내용이 계약 조건을 보완하거나 변경하는 특약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법원은 단지 ‘형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합의의 진정성’과 ‘내용의 구체성’, 그리고 그에 따른 실행 여부를 봅니다. 특히 이메일에 따라 실제로 납품이나 대금 지급 등 행동이 수반되었다면, 계약 효력을 인정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집니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상황을 가정해볼 수 있습니다.

A사와 B사는 납품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계약서에는 납기일이 ‘10월 1일’로 명시돼 있습니다.
그런데 B사가 갑자기 일정 변경을 요청했고, A사는 “10월 5일까지 납품해도 좋습니다”라는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이후 B사는 실제로 10월 5일에 납품했습니다.

이 경우 법원은, A사의 이메일은 계약서의 ‘납기일’ 조항을 수정한 특약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메일을 통해 기존 계약 조건을 변경한 유효한 합의가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서로가 그 이메일을 근거로 행동했고, 이행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서울고등법원 2022.8.17. 선고 2021나2049490 판결)



이메일이 계약 조건으로 인정되기 위한 세 가지 기준


이메일이 계약 내용으로 인정되려면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계약 당사자 사이에 명확한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같은 확정적 표현이 있어야 하며, “검토해보겠습니다” “가능한 방향으로 논의해보죠” 같은 모호한 표현은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그 내용이 계약의 본질적인 사항과 관련이 있어야 합니다. 가격, 수량, 납기, 해지조건, 손해배상 등 핵심 조건과 관련된 경우에는 더 엄격하게 해석됩니다.

실제 이행이 뒤따랐다면 효력 인정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메일로 합의한 뒤 그에 따라 납품·지급이 이루어졌다면, 묵시적 승낙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애매한 표현의 이메일은 분쟁의 씨앗이 됩니다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구체적인 표현이나 합의가 없는 단순한 “알아서 조정해 주세요”, “대충 그렇게 해요” 식의 이메일은 법적으로 불확실성이 크며, 계약 해석 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실제 계약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이메일이나 CC에 들어간 사람의 일방적인 발언 등은 계약 내용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반드시 계약 당사자 간의 명확한 의사표시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 이메일을 “근거 있는 말”로 남겨둘 수 있는가입니다. 말로만 한 약속이나, 수동적인 수신만으로는 법적 효력이 약할 수 있습니다. 적극적인 합의, 구체적인 표현, 그리고 이행. 이 세 가지가 이메일 합의를 ‘계약’으로 끌어올리는 핵심 기준입니다.



그럼에도 계약서는 왜 여전히 중요한가요?


계약 체결 이후 조건이 바뀌거나 사정이 생기는 건 매우 흔한 일입니다. 그럴 때 이메일로 조율하고 마무리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즉각적이고 유연한 것에 비하여, 이메일은 증거로서의 안정성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변경이나 추가 조건은 가능하면 공식적인 계약 변경서나 추가합의서(Amendment)로 작성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이메일로 정리하되 양측의 확정적인 표현과 실행이 명확히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계약서의 본문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도 이메일은 계약 내용을 구성하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계약 이후에도, 이메일 하나하나에 신중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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