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발주서 한 장으로 계약이 성립할까요?

-계약서 없이 거래할 때 꼭 알아야 할 법적 기준과 안전장치

by 송송

AI시대의 사내변호사 생존 스토리를 쓰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회사생활에서 법무에 가장 많이 들어오는 질문들도 함께 쓰고 있어요. 직장인들이 법을 몰라서 업무하는데 불편함은 없도록 하는것이 사내변호사들이 하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오늘도 서랍에 정리해두었던 글을 꺼내왔습니다.


발주서(PO)만으로 계약이 성립할까요?


회사간 거래를 하다 보면, 계약서를 따로 쓰지 않고 발주서(Purchase Order)만 주고받고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회사에서 “발주서만으로도 계약이 성립하나요?” , “문제가 생기면 배상을 받을 수 있나요?” 같은 질문을 종종 듣게 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발주서에 거래의 핵심 조건(품목, 수량, 가격, 납기일 등)이 명확하게 적혀 있다면 계약으로서의 법적 효력이 인정됩니다. 예를 들어 ‘A제품 100개를 2024년 5월 1일까지 개당 10만 원에 납품’이라고 적혀 있다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구체적인 거래 약속이 됩니다.
다만 발주서만으로 거래를 진행하면, 계약서에 보통 들어가는 세부 조건들이 빠져 있기 때문에 분쟁 위험이 커질 수 있습니다.



계약이 성립하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발주서는 보통 구매자가 보내는 ‘거래 제안’에 해당합니다. 공급업체가 이를 받아들여야 계약이 성립하는데, 꼭 서면으로 승낙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건을 준비하거나 배송을 시작하는 것처럼, 발주서 내용을 실제로 이행하는 행동만으로도 ‘승낙’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발주서만으로 거래를 하면 책임 범위가 불분명하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납품한 제품에 하자가 생겨 고객사에 손해가 발생했을 때, 공급업체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애매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민법이나 상법의 기본 규정, 그리고 해당 업종에서 통용되는 거래 관행이 적용됩니다. 하지만 이런 기준은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어 예측이 쉽지 않습니다.



발주서만 있을 때 배상 범위는?


발주서에 지연배상금 비율이나 품질보증 조건이 없으면, 기본적으로 민법상 ‘통상손해’ 범위만 인정됩니다. 납기가 늦어진 경우라면, 지연된 기간 동안의 이자 상당액이 통상손해로 계산됩니다.
만약 특별한 사정으로 더 큰 손해가 발생했다면, 상대방이 그 사정을 알고 있었거나 알 수 있었을 때만 ‘특별손해’로 배상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업계에서 오랫동안 지켜온 관행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건설업에서는 ‘지연일수 × 계약금액 × 0.1~0.2%’의 비율로 지연배상금을 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인 간 거래라면 상법상 ‘즉시 검사’와 ‘하자 통지’ 의무를 지켜야 하고, 이를 놓치면 나중에 하자를 이유로 배상을 받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안전하게 거래하려면 이렇게 하세요


지속적으로 거래하는 업체라면, 처음부터 기본 공급계약서를 체결해 두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기본계약서에는 지연배상금, 품질보증, 하자담보책임, 불가항력 면책 조항 등을 미리 정해 두고, 발주서에는 품목과 수량 같은 개별 주문 조건만 적는 방식입니다.


기본계약서를 만들기 어렵다면, 발주서에라도 핵심 조건 몇 가지를 반드시 넣으시길 권합니다.

예를 들어,

“납기 지연 시 지연일수 × 계약금액 × 0.1% 배상”

“검수 기준은 발주사 품질규정에 따름”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 시 면책”


이렇게 몇 줄만 추가해도, 나중에 분쟁이 생겼을 때 훨씬 명확한 기준이 됩니다.



발주서는 조건만 갖추면 계약서로 인정됩니다. 하지만 세부 조항이 빠져 있으면,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 범위와 배상 금액을 두고 다툼이 길어질 수 있습니다. 거래의 속도와 안전성을 모두 지키고 싶다면, 기본계약서와 발주서를 함께 활용하는 ‘이원적 구조’를 추천드립니다.




keyword
이전 13화Ep.30. AI 시대, 일의 속도보다 필요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