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내가 먼저 해보자
저는 평소에 새로운 기술이나 변화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편입니다.
뒤돌아보니 "어쩌다 보니 변호사" 가 되어있지만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들어가기 전, 이과생이었던 저는 컴퓨터와 기술 전반에도 관심이 있었고,
대학원에서 프로그래밍을 하고, 데이터 분석을 공부했었습니다.
당시에 지금의 생성형AI 같은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삶을 바꾸는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땐 너무 먼 이야기 같았고,
공부의 깊이가 얕았던 탓에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긴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조금만 더 공부해둘 걸 그랬나?”
이런 생각도 요즘 문득 들곤 합니다.
⸻
법률분야로 저의 주 활동 무대가 바뀌었지만 한계는 여전했습니다.
진로를 고민하던 대학원 당시 누군가가 저에게 이렇게 조언해주기도 했습니다.
“네가 말하는 컴퓨터에 관심이 있다는 건, 이미 고안된 결과물에 감탄하는 거야.
그런 수준으로는 너만의 컨텐츠를 만들기 어렵지 않을까?”
많은 고민끝에 저는 법률가라는 완전히 다른 무대로 이동하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그때 그 말대로 제 컨텐츠를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이 분야에서도 저는 ‘그리 특별하진 않은 일개 변호사’라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비법대 출신의 한계’라는 것도 늘 마음 한켠에 있었고요.
⸻
헛똑똑이 ChatGPT를 만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ChatGPT를 처음 접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분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질문을 던지고 답을 받아보는 방식으로 가볍게 써보았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모르는게 없이 정말 똑똑하네”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정보검색도 빠르고, 문장도 깔끔하고, 요약도 나름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법률 분야에서는
‘할루시네이션’과 같은 한계가 너무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법은 맥락과 조건, 적용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한데,
ChatGPT는 그 맥락을 무시한 채 그럴듯한 문장만 뽑아내는 경우가 많았고,
때로는 말도 안 되는 법률 조항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ChatGPT를 실무에 쓰는 것을 멈췄습니다.
계약서를 쓰는 것도 서면 초안을 쓰는것도 "업무에 최적화된 송송", 제가 더 잘쓰더라구요.
아직 법률분야에 쓰는것은 한계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
회사 일로 다시 만난 AI
회사에 입사하고 얼마되지 않아 법무 시스템을 새로 도입하게 되었고,
그 시스템은 제 손을 거쳐야만 실무 적용이 가능한 구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사 단위의 법무 시스템 업그레이드 TF 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프로젝트의 핵심 방향이,
바로 “AI를 활용한 법무 혁신”이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
처음엔 솔직히 의아했습니다.
그 AI라는 게… 내가 알던 ChatGPT 수준이라면, 그걸로 뭘 하겠다는 걸까?
내가 몰랐던 세상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기까지
하지만 프로젝트를 함께한 IT팀이나 주관 부서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은 기술의 흐름이 이미 현실로 다가와 있더군요.
그제야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내가 너무 좁은 시야로만 봤던 건 아닐까?
내가 모르는 세상이 있다면, 한번 따라가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아주 가볍게, 유튜브 영상부터 보기 시작했습니다.
AI의 개념, LLM(대형언어모델)의 원리, 산업에 미치는 영향, 미래의 일자리 변화까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저도 모르게 점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몰랐던 AI의 얼굴들
ChatGPT는 AI의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보이는 입구일 뿐, 더 넓고 깊은 기술 흐름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문득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진짜 AI 판사, AI 변호사라는 말이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는 단순한 관심이 아니라,
실제 법률 분야에서 AI가 어떤 식으로 사용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AI가 바꾸는 세상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쓰고 있는 이 책은, AI라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가 가진 법률 지식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 질문들에 대한 저만의 탐색기입니다.
AI는 도구이기도 하고, 위협이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는 자극제였습니다.
이미 변화는 필수불가결하다면,
피하는 것보다는 먼저 부딪혀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Ep.5 예고
업무는 결국 시스템의 언어로 옮겨질 수 있어야 한다 – 사내변호사와 일의 구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