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가보면, 계속 끌려다닐 것 같아서

by 틈빛

얼마나 더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언제가 처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몸은 같이 있었지만

마음은 점점 멀어졌고,

나는 그걸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다.


믿은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놓지도 못했다.

그냥, 돌아와 줬으면 했다.

그게 다였다.


뱃속의 아이.

그리고 손에 쥔 것 하나 없던 나.

나는 그때,

무언가를 선택 한다기보단

상황을 받아들이는 쪽에 가까웠다.

믿는 척이라도 해야

그나마 하루가 흘러갔으니까.


그는 자주 말했다.

“시간이 좀 필요해”


며칠, 몇 주, 몇 달...

시간은 흘렀고

그 말은 그대로였다.


말뿐인 정리는 계속됐고

나는 그대로였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은,

정리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의 절친이자 회사 동료였던 사람을 찾아갔다.


“내 남편이 지금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어요.”


이 말 한마디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다.

그가 뭐라도 말해주길,

그 말이 남편에게 닿기를 바랐다.


하지만 남편에게서 돌아온 건 이런 말이었다.


“ㅇㅇ이도 결국 내 친구야.

니 친구가 아니잖아.

누구 편을 들겠어.


알려서 니 마음이 편해질 것 같으면

얼마든지 해.”


나는 그날,

이 세상에서 가장 길고 허무한 ‘알아서 해’를 들었다.

무섭다기보다는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나는 지금 누구의 세계에도 속하지 않는구나.

그 사실이 제일 또렷하게 들렸다.


그날 이후,

직접 마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니까

이젠 그냥 내가 부딪히기로 했다.


그 여자의 집.

주차장.

남편의 차 앞에서 나는 그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여자를 만나고 나오는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귀찮다는 얼굴이었다.

마치 내가 또 뭔가를 따지려는 사람처럼,

지겨워하는 눈빛.

무너지는 건 나였는데,

질려 있는 건 그 사람이었다.


그 뒤로의 시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히 밥도 먹었고,

밤도 지나갔고,

햇볕도 들었을 텐데

기억은 흐릿하다.

스트레스가 일정 치를 넘으면

기억이 날아간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슬슬 마음속으로 준비를 했다.

아무도 잡아주지 않을 거라면

나 혼자라도 걸어야 하니까.


아이의 안녕을 위해

홀로 서는 연습을

조금씩,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또 하나의 밤을 버티던 새벽.

양수가 터졌다.


출산을 앞두고도

나는 여전히 불안했고,

남편과 다투었고,

잠들지 못한 채

천장을 바라보다

그 순간을 맞이했다.


삶은 감정과 무관하게,

일정대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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