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

조금 이상한 출발선, 정말로 시작!

by 산토리니

이전 학제까지는 입학식과 졸업식이 꼭 통과해야 할 관문과 같다고 생각했다. 참여해야 할 상징적인 의미가 가득했다고 말해야 하나. 사촌누나가 대학생은 입학식에 꼭 갈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해 주긴 했지만, 학교에 정도 붙일 겸 가기로 했다. 두 학번 선배인 누나가 길 안내도 해줄 겸 같이 가주었다. 덕분에 사진도 찍고, 초행길이었지만 입학식 장소인 운동장까지 전혀 헤매지 않고 잘 찾아갈 수 있었다. 별개의 이야기지만, 이후 재학기간이 꽤 겹쳤음에도 학기당 한번 정도밖에 못 본건 아쉬웠다.


0517cde7-4e4f-4034-a2b8-32ad2da89c8c.jpg 70주년. 숫자가 딱 떨어져서 기억에 남는다.


학교에서 버스를 내리자마자 처음 마주친 것은 사이비 설문조사를 하던 남녀 한 쌍. 사촌누나가 무시하고 가면 된다는 눈치를 줬지만, 우수한 호구답게 성실하게 설문에 답변해주고 입학식 이후 기도하러 와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이동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면 설문 내용도 정말 이상했는데 너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서 세상 물정을 몰랐나 보다. 그 때문에 학교생활을 하며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그때의 성장통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나저나, 학교 생활 중 겪은 사이비 설문조사 이야기로 특집을 써도 될 만큼 수집가 수준의 생활을 했었는데, 정작 '그들'을 끝까지 따라가지는 않았던 게 의아하긴 하다.


입학식은 대운동장에서 단과대별로, 전공별로 구역을 나누어 앉은 뒤 진행했다. 기억에 남는 건, 대학생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교가를 불렀다는 것과, 학군단이 칼을 들고 제식을 선보였는데 멀어서 하나도 안보였던 일. 입학식 중간에 학부 학생회장 안내에 따라 어느 건물로 갔던 기억이 난다. 다 함께 이동하던 장면이 입학 전 수리능력 평가를 쳤던 기억과 섞여서 헷갈리긴 한다.


여기서부터는 학교에 남아있던 병폐에 대한 이야기라, 모교의 과거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말을 아끼려고 한다. 물론 그런 문화는 우리 학번을 기점으로 축소되었고, 군 휴학을 하는 동안 완전히 사라졌다. 별다른 건 아니고 '대면식'이라는 이름으로 신입생끼리 조를 짜서 선배들 앞에서 춤을 췄었어야 했다는 것. 고등학교 시절에도 간부수련회에서 그런 문화가 있었지만, 3학년 때 간부를 했기 때문에 후배들의 재롱잔치를 즐기는 입장이라 부담스러웠던 기억은 없다. 게다가, 장기 자랑할 거리가 없는 후배들은 그냥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고교 간부 수련회도 할 이야기가 많지만, 일단 이야기가 너무 새어나가니 생략.


대부분의 팀이 아이돌 안무를 해야 했기에 춤 경험이 없었던지라 몹시 부담스러웠는데, 한 팀이 '아름다운 밤'을 제시해서 그 팀을 선택했다. 그 이후 공강 때마다 학교 곳곳에서 노트북으로 거울 모드 안무 유튜브를 찾아보면서 열심히 연습했었다. 지하주차장부터 공원, 공터, 공사장 등등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으면서 탁 트인 곳 위주로 숨어 다니며 나름 열정을 쏟아부었다. 연습하다가 장소를 찾는 다른 동기들을 마주치면 몹시 부끄러웠다. 다른 동기들은 파티룸과 강의실을 빌리기도 했다던데, 돈도 없고 시스템도 모르던 우리 팀은 부랑자 생활을 이어갔었다. 그 덕에 학교 곳곳의 숨겨진 꿀 장소를 많이 알게 되었다는 점. 공연은 나름 성공적이었고, 그때 함께 동고동락한 친구들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주 만나고 있다. 여담으로, 아이돌 댄스가 부담스러웠다 했는데 이 이야기는 엠티와 해외봉사로까지 이어진다.


지난번 '사전 수업' 학점 신청도 그랬지만, 모든 것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지나 봐서야 알 수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매 선택이 당시의 최선이었기에 후회가 있어도 큰 미련은 남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 입학식을 갔었기에 학부의 악폐습을 정면으로 맞았지만, 결과론적으로 좋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글 쓰면서 들은 노래]

붉은 돼지: 광기 - Hisaishi Joe

Innocent - Hisaishi Joe

Spring - Hisaishi J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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