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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셋째딸 Jan 05. 2021

은따 회사원의 나날

체질에 맞지도 않는 경쟁질

사실 나는 경쟁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등수에 목숨 거는 친구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경쟁이 싫어서 스포츠 경기도 거의 안 볼 정도다. 야구의 9회말 2아웃 상황이면 오히려 채널을 돌려버린다. 같은 이유로 한일 축구 경기도 안 본다. 경기에 지는 것이 큰 잘못이기라도 한 듯한 분위기가 내게는 너무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체조, 피겨스케이팅 같은 종목이 좋다. 이것들도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선수가 이긴다는 점에서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스포츠이긴 하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더 가까워 보인다고나 할까. 수영의 경우에도 주어진 레인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다른 사람이 어디까지 왔는지 끊임없이 체크하고 비교하는 상황, 상대가 한 골 넣으면 나도 당장 한 골 넣어야만 하는 상황은 그야말로 내키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늘 그런 상황 속에 놓여 있었다. 매일 그래프를 들여다보고 경쟁사는 얼마나 잘했는지 조사하고, 그 격차를 표로 만들어 시시때때로 윗분들께 보고해야 했다. 매일 어제의 매출을 10명 남짓한 수신자에게 메일로 보내고, 조금이라도 매출이 떨어진 날에는 회장님 비서의 전화를 받았다. 팀 간의 경쟁도 피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매출이 목표에서 한참 뒤처지면 심한 야단을 맞았다. 거의 말로 얻어맞는 수준이다. 모욕감을 느낀 직원 몇 명은 그만두기도 했는데, 나는 참 우직하게도 오래 다녔다. 


그냥 잠깐 몇 달만이라도, 경쟁사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내 생각대로 해볼 수는 없을까, 그냥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서 뚜껑을 열어보면 안 되는 걸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런 낭만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인간관계의 미묘한 틀어짐도 나를 힘들게 한 부분이었다. 한동안 나는 소위 말하는 은따였다. 꽤 친하다고 믿었던 동료 한 명이 나와 점심 먹기를 꺼리면서 미묘한 은따가 되었다. 대놓고 점심 멤버에서 빠져달라는 말은 못 하겠고, 그냥 스스로 빠져주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밥을 먹는 동안 나만 모르는 주제로 서로 대화를 나누고, 내가 오전 업무를 마무리하고 눈을 들어보면 모두가 자리를 비운 뒤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그 무리에서 빠지게 되었다. 


두 달 전쯤 서소문 역사 공원에 갔다가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식후 산책을 즐기는 회사원들을 보았다. 저 무리는 팀 단위로 점심을 먹는구나, 저 둘은 정말 친해 보이네, 이런저런 추측을 하면서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봤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그리고 혼자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지금의 평화가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나도 혼술, 혼영, 혼밥 좋아한다. 그러나 혼자 영화 보고 혼자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밥을 먹는 것과 구내식당에서 아는 사람들 틈에 앉아 혼자 밥을 먹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당연히 후자 쪽이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내 점심은 스타벅스 커피와 샌드위치일 때가 많았다. 지금은 나이도 먹고 얼굴도 두꺼워져서 '구내식당에서 혼자 밥 먹기'도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시절엔 남의 시선이 참 중요했던가 보다. 하등 쓸모없는 게 남의 시선인데 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요즘엔 대다수의 회사원들이 사무실에서 혼자 점심을 먹는다고 한다. 덕분에(?) 많은 은따들이 눈치 보지 않고 혼자 점심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이 점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순기능일까? 이런 웃픈 생각도 든다. 


은따이기만 했다면 그나마 좀 더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관계란 늘 변화하기 마련이니까. 가장 괴로웠던 건, 매출이 떨어지면 나의 자질, 나라는 인간의 가치마저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존감이 끝도 없이 바닥을 쳤다. 그 정점은 손가락질을 받은 날이었다. 상사가 내게 '넌 자격이 없다'며 코 앞에서 손가락질을 했다. 웃고 떠들던 회식 자리였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 처음으로 엉엉 울면서 집에 들어갔다. 어릴 때도 안 해본 짓이다. 이래도냐, 이래도 안 나가냐, 그러는 것 같았다. 버틸 만큼 버티고, 스스로를 완전히 소진시킨 후에야 그곳을 빠져나올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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