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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셋째딸 Dec 30. 2020

퇴사 후에도 스트레스가 남았더냐

달리 만병의 근원이 아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분류되고 나면 남는 건 스트레스다. 그 무렵 한 의사가 내게 대체의학 병원을 추천했다. 미국에서 공부를 많이 하고 돌아온 의사란다. 진료비가 엄청 비쌌지만 한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 의사는 내 몸을 여기저기 두드리고 당기고 밀어내면서 AK 테스트라는 것을 시행했다. 그러고는 과거를 돌아보며 나에게 상처로 남은 사건들을 적어오라고 했다. 무의식에 가라앉은 심리적인 문제가 의식 위로 떠오르려 할 때 신체가 통증을 만들어낸다는 말을 들어본 것도 같았다. 심리적인 문제를 잊기 위해 다른 문제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인 듯했다. 자기 문제를 직면한다는 게 그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문제를 직시하느니 차라리 아프고 말겠다고 인체가 스스로 통증을 선택할 만큼 말이다. 


그러나 내가 그 정도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각했는지,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누구나 그 정도 스트레스는 갖고 사는 것 아닌가? 설사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수준의 두통이 올 정도였나? 게다가 두통이 시작된 시점은 회사를 그만두고 자유의 몸이 된 이후가 아니던가.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조금씩 인정하게 되었다. 


나를 너무나 지치게 했던 회사 생활, 나의 본성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해야 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힘들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가면을 쓰고 생활했던 날들이다. 돌이켜 보면 회사 다닐 때도 징조는 나타나고 있었다. 가끔 삐-하는 이명이 들렸고, 보고 시간이면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낮에 벌어진 사건들이 떠올라 마음이 괴로웠다. 당시 우연한 기회로 스트레스 지수 테스트를 무료로 받았는데 매우 심각하다는 결과가 나왔던 기억도 난다. 겉으로 드러난 나와 진짜 나의 간극이 몹시 크다는 결론이었다. 


이런 결과에도 나는 웃어넘겼다. 산업혁명 시대의 영국 사람들이 회색빛 하늘을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는 일화가 있다. 오염된 공기는 산업 발전의 증거인 셈이니까. 아마 그때 내가 은연중에 그런 마음을 품었던 건 아닌가 싶다. 그래, 이건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야. 이런 생각을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건 아닐까?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이 정도의 스트레스는 겪는다고 생각했고, 이런 것도 이겨내지 못하면 나약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사원 시절에 만난 내 또래 경력직 직원의 영향이 있었다. 


회장님께 엄청 혼이 난 날이었다. 회장실을 나오며 정신이 혼미해진 나와는 달리, 그 자리에 함께 있던 그 직원은 너무나 담담했다. 그녀는 말했다.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다른 회사에선 얼굴에 서류도 던지고 더 심한 말도 한다며 이런 일에 놀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순간 내가 엄살을 부린 것 같아 무안해졌고, 그 뒤로는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 정도쯤이야, 그런 태도로 나를 중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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