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뇌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어떤 의사는 섬유근육통이란 병은 없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병명의 쓰레기통’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병을 쓰레기통에 다 담아서 한꺼번에 섬유근육통이라고 진단한다는 것이다. 모든 병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으며, 섣불리 ‘원인 없음’으로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 의사도 원인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으며 진통제를 처방하는 것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힘드시겠습니다.”
의사는 모니터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그만 나가보라는 마지막 인사말이었다. 지금은 그 의사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 그러나 그때는 그 한마디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힘드시겠습니다.’ 이 말이 그때처럼 서럽게 들렸던 적도 없다. 정말로 힘든데, 진심으로 힘들어 죽겠는데 ‘힘드시겠습니다’라니, 기운이 쫙 빠졌다. 흔한 위로의 표현인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한 일은 비참한 기분마저 느꼈다는 사실이다.
의사가 그때 무슨 말을 했어야 할까? 아마 어떤 말도 내게 곱게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의사가 아무 말 없이 약만 처방했다면 어땠을까? 그 침묵이 거슬렸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랬다. 방에는 각 잡힌 자세로 앉아 모든 진료 과정을 지켜보는 두 명의 의대생이 있었는데, 그들의 말없는 눈길도 어쩐지 불편했다. 약간의 수치심과 모욕감마저 들었다.
구경꾼들 앞에 선 기분이었다. 의사도, 학생들도 모두 구경꾼이었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희한한 병명을 받아 든 나를 요리조리 뜯어보고 있을 것 같았다. 엄청난 높이의 장벽이 그들과 나 사이에 가로놓여 있었다.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었던 나는 언제라도 상처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셈이다. ‘힘드시겠습니다’라는 위로의 말에서도 ‘당신은 힘들겠지만 나는 당신과는 달리 힘들지 않고 당신을 도와줄 수도 없어요.’라는 속뜻을 기필코 읽어내고야 마는 한없이 작아진 내가 있었다.
아이를 잃은 엄마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똑같이 아이를 잃어본 엄마뿐이라고 했던가. 나처럼 섬유근육통을 앓고 있다는 의사를 만났을 땐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분이 들었다. 이 사람은 알고 있으리라는 안도감, 나도 이 사람처럼 일상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느꼈다.
섬유근육통은 근육의 아픈 지점을 강하게 눌러보면서 진단하는데, 그 의사는 내 근육을 눌러볼 힘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환자 진료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의사는 내가 들려주는 증상만으로 진단하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치 자갈밭에서 자다가 일어난 것처럼 등이 결려요.”
의사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기 물리치료만 받아도 팔이 아파요.”
의사는 다 안다는 듯이 또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핀잔도, 무리할 정도로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는 주문도 없었다. 내 몸에 맞춰서 조금씩 움직여야 한다고, 가능하면 햇빛을 보며 자주 걸으라고 했다.
진통제 위주의 약들에도 변화가 생겼다. 소위 ‘간질약’이라고 불리는 리리카를 처방받았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죽기보다 먹기 싫어했던 약이다. 친구 말로는 머리가 몽롱해지고 살이 찐다고 했다. 그런데 그걸 내가 먹게 될 줄이야. 다행히(?) 살은 찌지 않았다. 음식을 먹는 족족 설사로 내보냈으니까.
요즘 그 약을 만든 회사가 완전 핫하게 떠올랐다. 화이자.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했다는 뉴스의 주인공이다. 사람들에게는 백신 개발사로 기억되겠지만, 내게는 리리카의 제약사로 남아 있다.
리리카는 간질 치료제이면서 동시에 섬유근육통 치료제이기도 하다. 내가 알기로는 섬유근육통 치료제로 명시된 약은 이 약이 유일하다. (정확하지는 않다.) 약의 기전이 간질과 섬유근육통에 모두 통한다는 뜻은, 섬유근육통이 뇌의 문제라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수십 년 멀쩡하게 작동했던 나의 뇌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