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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셋째딸 Dec 18. 2020

하루를 없애는 시간에 대하여

천지에 나 혼자

가장 힘든 시간은 새벽이었다. 새벽에 홀로 깨면 천지에 나 혼자다. 옆에서 들리는 남편의 코 고는 소리는 나의 고독감을 더욱 뚜렷하게 부각시킬 뿐이었다. 그저 혼자 우두커니 벽에 기대고 앉아 통증을 견디는 것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시간 죽이기’를 실천한 셈이다.


‘소일하다’에서의 ‘소(消)’가 ‘소멸시키다’, ‘삭이다’, ‘없애다’라는 뜻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작고 소소한 일을 한다고 해서 ‘소일하다’가 아니다. 본래의 한자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하루를 없애다’라는 의미를 가졌다. 그래서 누군가는 쓰지 말아야 할 표현이라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얼마나 한가하면 일부러 하루를 없애고 앉았냐는 것이다. 확실히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인 사람들 앞에서 쓸 만한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소일하다’는 나처럼 아픈 사람이 만들어낸 말은 아닐까? 너무나 아파서 하루를 없애버리고 싶은 사람. 자기 앞에 펼쳐진 고통의 시간을 다 지워버리고 싶은 바람을 담은 말은 아닐까? 


말 그대로 ‘하루를 삭이며’ 버틴 밤의 시간들. 처절하리만치 외롭고 두려운 시간 동안 했던 일이 딱 하나 있기는 하다.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것. 이 아픔에서 날 구해달라고 호소하는 것. 자기 필요할 때만 하느님 찾는 얄미운 인간이라고 욕해도 할 수 없다. 나는 너무 외로웠고, 그 늦은 시간에는 하느님밖에 부를 대상이 없었으니까.


며칠 전 TV에서 강에 빠진 할머니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해외토픽 뉴스를 봤다. 할머니가 살 수 있었던 비결은 가만히 누워서 구조를 기다린 것이었다. 할머니는 발버둥 치는 대신에, 온몸의 힘을 빼고 물 위에 편안히 눕기를 택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강에 누워 있었다고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최대한 힘을 뺀 편안한 자세로 죽음과 사투를 벌인 셈이다. 


그렇게 물 위를 떠다니며 할머니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늘, 온통 파란 하늘뿐이었을 것이다. 할머니와 하늘의 독대가 몇 시간 동안 이어졌을 것이다. 그때 할머니는 하늘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두렵기 그지없는 그 긴 시간 동안 할머니도 역시 살려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을까? 외롭고 무기력한 나를 이렇게 혼자 내버려 두지 말라고, 할머니만의 신을 향해 계속 말을 걸었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건 그 시절의 나는 할머니처럼 담대한 인간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온몸의 힘을 빼고 편안히 누워서 구조를 기다릴 여유와 지혜가 그때 내겐 없었다. 발버둥을 치고 팔을 허우적대며 제발 나 좀 봐달라고 외쳤다. 그럴수록 더욱 깊은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줄은 깨닫지 못했다. 


수면제를 먹어야 간신히 잠이 들곤 했는데 그 효과도 오래가진 못했다. 길어야 4시간?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이라도 내겐 정말 소중했다. 장기 처방이 안 되는 약이었기 때문에 아껴 먹어야 했다. 그야말로 나만의 소중한 비상약이었다. 


가끔 연예인들의 졸피뎀 관련 기사와 ‘약쟁이’니 ‘마약’이니 욕하는 댓글을 볼 때면 기분이 묘해진다. 내 소중한 비상약의 성분이 졸피뎀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의사에게 처방받아 제대로 복용해야 하고, 불법으로 반입하려는 시도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고통을 잘 알기에, 그런 기사를 보면 한 사람의 비밀스러운 고독과 아픔을 목격한 기분이 든다.


하루는 수면제를 먹고 잠깐 잠이 든 사이에 꿈을 꿨다. 진흙으로 온몸이 더러워진 세 명의 아이를 씻기는 꿈이었다. 아이들의 머리 위로 물줄기를 뿌리는데 그들의 표정이 세상 시원해 보였다. 보는 나까지 시원해질 만큼. 


“아, 시원하다.”


꿈에서 그렇게 중얼거렸던 것 같다. 

그 순간 바로 잠에서 깼다. 그러자 나의 아픈 감각도 깨어났다. 

또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아, 굳이 깰 필요 없는데. 또 시작이구나.’


그때 난 그런 생각을 했다.

고층빌딩을 보면 ‘저기서 뛰어내리면 죽을 수 있겠지’ 싶었고, 커다란 트럭이 지나가면 ‘저 차에 치이면 죽을 수 있겠지’ 생각했다. 일기장을 찢어버렸다. 내가 죽은 뒤 남겨질 가족들이 읽으면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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