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만 쿨한 이별
연인과 이별하면서 자신의 바닥을 봤다는 친구가 있다. 집 앞에 찾아가 늦은 시간까지 기다리고, 울며불며 매달리고, 문자 폭탄을 보내는 등 별짓을 다 했단다. 상대에게 진상으로 낙인찍힐지언정, 훗날 이불 킥을 할지언정, 하고 싶은 말은 다하고 끝내야 미련도 없으리라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반면에 헤어지자는 연인에게 알겠다는 말만 툭 던지고 바로 돌아서는 사람도 있다. 다시 연락하는 일도 없이 깔끔하다. 속마음은 어떨지 모르지만 겉보기에는 아주 쿨한 이별이다.
퇴사의 과정을 이별에 비유한다면, 나는 그야말로 쿨한 이별 쪽이었다. 집에 울면서 들어온 그날로부터 3개월쯤 지나 사직서를 냈는데, 일부러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는 평범한 날을 택했다. 담담해 보이기를 바랐다. 힘들고 지쳐서 쫓기듯이 그만두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가는 것처럼 보였으면 했다. 왜 이런 사소한 것들까지 신경 썼는지, 지금 돌이켜 보면 참 답답할 정도다.
상사가 얘기 좀 하자고 나를 불렀다. 왜 그만두느냐, 언제 처음 그만둘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솔직히 답하기만 하면 되었다. 아주 단순한 문제였다. 나의 상처 받은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너 때문이다, 이 자식아!’ 소리 지르고 삿대질하면서 난동을 좀 부려도 됐을 텐데,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고 말하면서 눈물 콧물 짜도 됐을 텐데, 평소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점들을 조목조목 따져도 괜찮았을 텐데.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을까? 나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좀 쉬고 싶어 졌을 뿐’이라고 답했다. 그게 다였다. 회사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업무 인계도 잘 마무리했고, 환송회 다음 날에는 일찍 출근해서 자리도 깨끗하게 정리했다. 누구 한 명 얼굴 찌푸리는 일 없는 쿨한 이별이었다.
그러나 내 속은 전혀 쿨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무섭게 들릴지도 모르겠는데, 그때 난 일종의 복수심을 품었던 것 같다. 도대체 누굴 대상으로 어떤 복수를 하겠다는 건지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이상한 복수심이었다.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 ‘보란 듯이’라는 표현이 관용어처럼 쓰이는 걸 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은 인생을 살게 되었다. 내 이름을 꾸며줄 수식어가 아무것도 없었다. 늘 몇 학년 몇 반 누구였는데, 어느 학교 누구, 어느 회사 어느 팀 누구였는데, 당장 내일부터 그 수식어를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냥 나, 아무런 수식어도 없는 나라는 인간 하나로는 부족했다. 초라하고 볼 품 없었다. 나를 꾸며줄 수식어를 빨리 찾아야 했다. 길고 화려한 수식어, 그것이 성공이었고,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에 대한 복수였다.
결과는 이미 알고 있는 그대로다.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각종 통증에 시달렸고, 덕분에 성공은커녕 장기하가 말하는 ‘별일 없이 사는’ 복수마저도 처절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복수혈전에서 혼자 싸우고 혼자 패배했다.
경쟁이 싫다고 해놓고서, 경쟁이 싫어서 회사를 그만뒀으면서, 실제로는 나를 더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 가두고 있었던 셈이다. 어느새 나는 경쟁에 길들여져 있었다. 누가 몇 등을 하는지, 어느 학교에 가는지, 얼마를 버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잘 살던 본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비교하고, 경쟁하고, 복수의 칼날까지 가는 낯선 사람이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오래전 동물 다큐에서 본 뻐꾸기가 생각났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그것도 모자라 남의 새끼를 모조리 죽여버리는 뻐꾸기. 마치 내 마음은 뻐꾸기에게 점령당한 종달새 둥지 같았다. 종달새는 나였다. 정작 자기 새끼는 다 죽는 줄도 모른 채 열심히 먹이를 물어 날라 뻐꾸기를 키운 바보 같은 종달새.
찾고 싶었다.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를 본래의 내 모습을. 종달새들만 모여서 종알종알 떠드는 행복한 둥지를 만들고 싶었다. 뻐꾸기에게 먹이를 주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많은 욕심들 중에서 씻은 듯이 낫고야 말겠다는 욕심도 내려놓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