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명의 변천사
나의 두통은 근육의 문제였을까, 신경의 문제였을까? 사실 이 질문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물음과 같다. 근육과 신경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혈액순환, 근육의 긴장, 신경의 예민도, 그 외 200개는 됨직한 이유들이 종합적으로 빚어낸 결과물이 바로 두통이 아닐까. 예민한 신경은 근육을 긴장시키고, 긴장된 근육은 신경을 자극하고, 이런 과정을 무한 반복하면서 만성 두통의 길로 들어서는 셈이다.
그 지난한 여정을 거치면서 두통에도 정말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또한 세상에는 나와 같은 두통 환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무심결에 지나쳤던 두통 환자들이 떠올랐고, TV를 보다가도 두통 환자가 나오면 눈을 떼지 못했다.
우선 두통 때문에 힘들어했던 직장 후배가 생각났다. 그 후배는 화장실에서 구토하고 완전히 지쳐 자리에 돌아와서는 한참을 엎드려 있곤 했다.
“또 체했어? 약은 먹었어?”
무지했던 내가 그 후배에게 했던 질문이다. 급체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배는 평소에도 체하는 게 무서워서 면 요리를 먹지 않았고, 혹시라도 먹게 되면 정말 새 모이만큼만 먹었다. 지금은 그 후배의 증상이 구토를 동반한 전형적인 편두통임을 알겠다. 타이레놀이나 소화제 말고 편두통에 특화된 약을 먹어보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갑자기 연락하자니 쑥스럽다. 그저 좋아졌기를 바랄 뿐이다.
순천 여행 중에 버스에서 만난 중년 아저씨도 생각난다. 아저씨는 큰소리로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시내 약국에 들렀다 오는 길이라고 하셨다. 듣자 하니 두통 때문이었다. 흔한 두통인가 생각했는데, 특이하게도 이런 말씀을 하셨다.
“소똥 냄새만 맡으면 두통이 더 심해지더라고.”
지금 생각하면 그 아저씨도 편두통 환자일 확률이 높다. 소똥 냄새를 피하기 어려운 환경인 것 같은데, 아직도 아플 때마다 진통제로 버티고 계실까? 부디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본인에게 맞는 약을 찾으셨기를 바란다.
한번은 ‘빨간 머리 앤’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다가 깜짝 놀란 적도 있다. 마릴라 아주머니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앉아 있는데 앤이 이렇게 묻는 게 아닌가.
“아주머니, 두통은 좀 어떠세요?”
충격이었다. 밝고 명랑한 앤의 이야기에 온통 정신이 팔려 아줌마는 아프든지 말든지 관심도 없었는데... 마릴라 아주머니가 두통 환자였다니. 아프니까 아픈 사람들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지금까지 받은 진단명과 시행착오를 간단히 정리해보려고 한다. 내 경우를 일반화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단지 나처럼 헤매지 않기를 바라는 뜻에서다. 편두통인 줄도 모르고 소화제 먹고 버티는 안타까운 일만은 없길 바라는 뜻에서 정리해본다.
1. 긴장성 두통
스트레스, 피로, 수면부족, 잘못된 자세 등의 원인으로 발생한다. 보통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가장 흔한 두통이다. 두통 발생 초기에는 긴장성 두통을 ‘근육이 긴장한 두통’이라 여기고 근육 이완에만 집중했다. 긴장한 근육을 풀어준답시고 한의원에서 피를 많이 뽑았다. 솔직히 여기서부터 잘못 끼운 단추였다고 본다. 사혈 한 근육이 너무 단단히 굳어버려서 나중에 더 힘들어졌다. 진통제, 근육이완제 등을 먹어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효과는 없었다. 대부분의 긴장성 두통은 약과 스트레칭, 스트레스 조절로 좋아진다고 하는데 내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병원 주사였다.
2. 근막동통 증후군
근육에 생긴 통증 유발점 때문에 발생하는 다양한 증상들을 말한다. 근육에 팽팽한 띠, 굵은 매듭 같은 것이 만져진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매듭이 처음부터 있던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최소한 말랑하기라도 했는데, 사혈을 자주 하면서 없던 매듭이 생겨버렸다.
통증 유발점을 자극하면 다른 위치에 방사통이 느껴진다. 승모근을 자극했는데 관자놀이가 아픈 식이다. 치료를 위해 재활의학과, 정형외과에 가서 통증 유발점 주사를 맞았다. 한두 번은 잠시 괜찮아진 듯도 했지만 보통은 똑같거나 다음날 더 아팠다. 근육의 매듭을 풀기 위해 스트레칭에 매달렸다. 그러나 매듭은 절대로 쉽게 풀리지 않았다.
3. 후두신경통
후두 쪽에 생기는 신경병증으로 승모근 근막에 신경이 눌리면서 발생한다고 한다. 신경과, 마취통증과 두 곳에서 후두신경통 진단을 받았다. 스트레칭과 주사 치료를 주로 했는데, 특히 마취통증과 주사는 지겹도록 오래 맞았다. 의사가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기 때문이다. 통증 부위에 마취제를 주사하여 흥분한 신경을 달래는 방식인데 내겐 효과 없었다.
4. 섬유근육통
섬유근육통은 전신의 통증, 뻣뻣함, 감각 이상, 수면 장애, 피로감을 일으키는 통증 증후군이다. 이 시기의 내 증상이 워낙 독특했기 때문에 그야말로 다양한 원인이 제기되었는데, 자율신경 이상, 간과 신장 이상, 부신 호르몬 이상, 혈액 부족 등이 그것이었다. 다행히도 류마티스 내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서 효과를 조금 봤다. 신경병증성 통증 치료제,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등의 약을 한 달 정도 먹으니 극심한 통증은 가라앉았다. 그러나 최초의 증상,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5. 편두통
편두통을 한쪽 머리만 아픈 병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갑작스럽게 수축됐다가 다시 확장된 혈관이 신경을 자극해 발생하는 통증을 보통 편두통이라고 부른다. 전형적인 편두통 증상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심하면 구토를 하기도 한다. 빛과 소리 혹은 냄새에 대단히 민감해진다. 호르몬의 영향도 있다. 어떤 이들은 단순히 생리 전 증후군이라 여기고 ‘두통, 치통, 생리통’ 약을 먹으며 참고 지낸다.
편두통 환자들은 일반 진통제보다는 편두통에 특화된 진통제를 처방받아 복용하기를 권한다. 확장된 혈관을 다시 수축시켜주기 때문에 일반 진통제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두통에 대해 잘 아는 신경과 의사와 상담해야 한다.
내 경우엔 전형적인 편두통 증상은 없었지만 뇌혈류 속도가 남들보다 빠르다고 했다. 이는 혈관이 수축해 나타나는 증상이라며, ‘상세 불명의 편두통’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편두통에 특화된 약들도 내게는 별 효과가 없었다. 머리에 보톡스도 맞아봤지만 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들은 얼굴에 보톡스를 맞는데 나는 머리통에 맞는구나, 혼자 쓴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