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VS 일백 번 고쳐죽어
이방원과 정몽주가 조선 건국 당시 시조를 주고받은 이야기는 유명하다. 만약 두 사람이 현대 명사특강에 나선다면 팽팽한 인생관 대결로 흥미진진한 빅매치가 펼쳐질 것이다.
이방원의 선제공격.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어차피 살다 갈 것 즐기면 좀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행복하게 백 년을 누리리라.
이에 정몽주는 이렇게 응수할 터.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꿈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인생을 사는 데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하며 초긍정의 힘을 발휘하거나 ‘일백 번 고쳐죽어’서라도 꿈을 향해 정진하는 것. 그리고 ‘이런들 저런들’ 하다가 ‘일백 번 고쳐’가며 나름의 삶의 기술을 터득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방식이 있다는 건 삶을 고민한다는 흔적이다. 누구나 인생 고민을 안고 산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공허한 메아리가 ‘열심히 살수록’ 강렬하게 들리는 건,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한다는 것만큼이나 최고의 아이러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