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러 있지 않아 다행이야

멀어져가는 청춘이 있어야 삶의 여백을 볼 줄 아는 나이도 가까워오는 법

by 글쓰는 김민정

어린 시절이 지나고 옛일이 그리워져 자주 돌아보는 나이가 되면 삶에 여백이 얼마나 많은지 비로소 알게 된다.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마음을 파고들 때, 그래서 내 입에서 노랫말이 흥얼대고 있을 때 우린 비로소 서른이라는 문 앞에 서 있음을 알게 된다. 마침 대구 대봉동에 있는 김광석 거리를 다녀올 일이 있어 포털 사이트를 기웃거리는데 한 블로거의 글에 픽하고 웃음이 터졌다.

머물러 있는 현금인 줄 알았는데

머물러 있는 데이터인 줄 알았는데

머물러 있는 정상체중인 줄 알았는데 [네이버 블로그, 누구나 비밀은 있다 http://kwj916.blog.me]


아, 청춘의 고뇌여!

영원할 것만 같던 것들의 끝을 알아버리는 순간은 당혹스럽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중에 제일은 아마도 청춘일 터. 현금이나 데이터처럼 충전할 수도, 불어난 체중처럼 다이어트할 수도 없으니까. 그저 이별하며 사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으니까.

민낯이 민폐가 아니던 소녀의 시절이 있었다. 무얼 해도 세상이 받아줄 거라 믿었던 맹랑한 시절도 있었다. 온갖 실수도 애교가 되던 막내의 시절이 있었고 세상은 넓고 남자는 많았던 꽃다운 시절 또한 있었다. 영원할 줄 알았던 그 시간들이 점점 더 멀어져간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니고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또 하루 멀어져간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우리는 들어왔다. 하지만 들어서 아는 지식과 그것을 겪으면서 깨닫는 지각 사이에는 엄청난 틈이 있다. 서른이 마흔이나 쉰과 다른 이유는 자로 잴 수도 저울에 달 수도 없는 이 틈을 처음 경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도 머물러 있지 않은 법. 시간이 지나면 당혹스러운 마음도 자연스러워질 테고 곧 무뎌진다. 머물러 있지 않으므로 깜깜한 밤이 지나면 새 아침이 밝고 상처도 아물어 새 살이 돋으며 이별 후엔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머물러 있지 않아 다행인 건, 이뿐일까?


멀어져가는 청춘이 있어야 삶의 여백을 볼 줄 아는 나이도 가까워오는 법.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살 줄 아는 인생의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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