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하니까 서른이다

서른쯤 되면 집도 있고 차도 있을 줄 알았다

by 글쓰는 김민정

유유상종이라면 도저히 친구일 수 없는, 달라도 너무 다른 스물아홉 세 여자의 막걸리 타임.


“서른쯤 되면 뷰가 끝내주는 아파트 하나쯤 있을 줄 알았다.”

“주차장엔 어울리는 섹시한 빨간 차 한 대도 있었어야 해.”

“그리고 조인성 같은 남편이 토닥토닥 재워주는 거지.”

크고 작은 사각형이 빼곡하게 들어앉은 원룸촌에 살면서 차는커녕 교통비 아끼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환승하는 게 일이고, 남편은 언감생심 남친도 없는 우리는 천 원짜리 막걸리를 마시다가 누구라도 먼저랄 것 없이 외쳤다.

“이게 다 조인성 때문이야!”

어느새 막걸리 안주로 ‘서른쯤 되면’이 올라 있는 상에서 우리는 애꿎은 조인성을 탓하며 청춘을 달래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 된 데는 조인성이 아니라, 조인성이 나온 드라마 때문일 공산이 크다. 그가 주연했던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여주 송혜교가 연기한 오영은 스물여덟의 대기업 상속녀. 예쁜데다가 똑똑하기까지 하다. 그나마 상속녀라니까, 남 일처럼 여기면 그만이라며 위안 삼아보지만 문제는 모든 드라마가 잘나고 똑똑한, 차도 있고 집도 있고 근사한 예비 신랑까지 둔 등장인물을 이십 대 후반 여성으로 설정한다는 거다. 그건 명백한 공상이다.


물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영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보수적인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정규교육을 받고 자란 평범한 대한민국 이십 대 후반들은 여전히 깜깜한 미래를 고민하고, 옅은 촛불 하나라도 밝히고자 매일같이 사회에서 깨지고 또 깨진다. 이게 명백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유달리 ‘서른쯤 되면’이 스물아홉 식탁에 자주 오르는 건 좋은 핑계거리였기 때문인 것 같다. 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경쟁에 내몰렸던 우리에게 ‘서른쯤 되면’은 숨 돌릴 구석이 되어준 문장이다. 비록 지금은 남루하여도 서른쯤 되면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거라는 희망. 짧지만 달콤한 청춘의 비상 탈출구. 그러니 처음 마주하는 세상이 달걀로 바위 치기이더라도 칠전팔기하자는 이십 대의 다짐. 그렇게……


무수히 다져진 후에야 알게 되는 불편한 진실.

서른은, 초라함을 벗는 나이가 아니라 오만함을 벗고 초라함을 입는 나이.

대책 없이 장밋빛 미래를 바라 온 오만함. 세상 앞에 보잘것없는 나를 마주한 초라함.

그런 내가 일궈가는 오늘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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