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냥'인 관계의 참을 수 없는 소중함
빨간 날 이른 낮.
친구와 나는 강남대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2층 카페에 앉아 십 분째 말이 없었다. 십차선 도로에는 차들이, 갓길에는 데이트족이 쉴 새 없이 오가는데 우리의 시계만 멈춘 것처럼.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딴짓하다가 이따금 “야, 지난주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로 시작하는 말에 “대박”으로 시작하는 답을 하는, 일상의 대화를 했다. 그러곤 다시 각자 책을 보다가 잡지를 넘겼다가 음악을 듣다가 창밖을 봤다.
대개 카페에 아무 말 없이 누군가와 마주 앉아 있는 건 고역이다. 아주 잠깐의 침묵도 불편하다. 내가 이런 사람이올시다 해야 하거나 분위기를 맞춰야 할 것만 같다. 그가 꺼낸 만큼 나도 내놔야 할 것 같아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헤어진다.
오후가 되자 카페가 북적였다. 우리는 밖으로 나와 같이 걷다가 너는 네 집으로, 나는 내 집으로 갈라졌다. 우리는 서로를 서로만큼 알고, 분위기는 맞추는 게 아니라 느끼는 거란 사실도 알 만큼 오랜 관계다. 그래서 단 1분도 억지가 없다. 강줄기 두 개가 만났다 헤어지듯 자연스럽다. 아주 반갑게 만났다가 아주 섭섭하게 헤어지는 게 아니라 '언제나 그냥'인 관계다. 그런데 서른이 되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냥인 관계가, 일상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부쩍 사랑스럽다.
살다 보면 마음이 가난해지거나 살아갈 시간이 아득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특별한 위로보다 보통의 위안이 받고 싶다.
평범함의 가치를 잃어가는 세상에서…
십년지기 친구의 존재가 눈물 나게 고맙다.